[연예가 블랙박스]대박 터뜨린 ‘히딩크 시나리오’

  • 입력 2002년 6월 24일 17시 57분


대한민국 국가 대표 축구팀을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시킨 거스 히딩크 감독이 ‘사법처리’(?)될 위기에 처했다. 500만 시민을 길거리 응원으로 내몬 ‘다중불해산죄’(多衆不解散罪) ‘교통방해죄’(交通妨害罪)가 적용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를 연출해 국민들의 피가 마르게 만든 ‘상해죄’(傷害罪), 새벽까지 경기를 몇 번씩 다시 보며 밤잠을 설치게 만든 수면방해죄, 극적인 승부로 인해 2명이 심장마비로 숨지게 한 죄, 축구 경기가 없는 날이면 국민들이 의욕을 잃고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든 ‘업무방해죄’ 혐의다.

또 우리 때문에 탈락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3개국과 외교 관계를 악화시킨 혐의도 추가, ‘무기감독형’이 구형됐다고 한다.

이처럼 황당무계한 유머가 나온 것은 한국 축구 대표팀의 놀라운 월드컵 성적 때문이다. 선수들의 투혼과 붉은악마의 열화와 같은 응원, 더불어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과 용병술이 온 국민의 화제로 떠오른 것이다.

흔히 명승부가 나오는 스포츠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인위적으로 대본을 쓰라고 해도 한국팀의 이탈리아전이나 스페인전같은 극적인 대본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항상 잘 되지는 않는다. 시련과 역경을 겪는 주인공에게 대중들은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면 주인공이 승리의 주역이 되게끔 되어있다.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이 그랬다. 페널티킥을 실축해 국민들을 실망시켰고, 여러 차례의 기회를 무산시키며 애간장을 태웠다. 하지만 그의 골든 골은 결국 우리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안정환은 그 날의 엔딩 커트의 주인공이 되었다. ‘조연’ 차두리의 환상적인 오버헤드킥도 극적 재미를 더했다.

아무리 시나리오가 좋고 캐스팅이 화려해도 감독의 연출력에 문제가 있으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거장 임권택 감독의 저력은 판소리 동양화 등의 한국적 소재로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하고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히딩크 감독 역시 한국식 압박 축구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정향 감독의 섬세한 터치는 아마추어 배우들만으로 ‘집으로...’ 라는 영화를 만들어 대박을 터뜨렸다. 히딩크 감독 역시 고종수 이동국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빼고 박지성 송종국 김태영 등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을 기용하는 파격 캐스팅으로 신화를 창조해냈다. 흥행의 천재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이나 강제규 감독의 ‘쉬리’ 곽경택 감독의 ‘친구’ 등 흥행에 성공한 대표작들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함없이 재미있으며 마지막에 우리를 놀라게 해줄 극적인 반전들이 포진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이 연출한 한국 축구도 그렇다. 시종 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며 극적 반전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명장 감독의 손끝에서 걸작이 탄생한다. 오늘 독일과의 4강전을 앞두고 아직 히딩크 감독의 시나리오는 보지 못했지만 또 하나의 흥행 대박이 터지는 걸작을 기대해본다. “대∼한 민국! 짝짝 짝 짝 짝! 오∼필승 코리아!”

김영찬·시나리오 작가 nkjaka@hanmail.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