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스타]이운재 "불패신화 내손안에"

  • 입력 2002년 6월 22일 19시 28분


연장전을 포함한 120분간의 혈투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들어간 피말리는 승부차기.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는 호아킨 산체스. 볼로 대시하던 호아킨 산체스는 방향을 속이기 위해 페인트 모션을 취했지만 이운재는 속지 않았다. 슛 하기 직전 멈칫해 속도가 떨어진 슛은 위력을 잃은 채 오른쪽으로 향했고 방향을 알아 챈 이운재가 몸을 가볍게 날리며 툭 바깥으로 쳐냈다. 이운재가 큰일을 해내는 순간이었고 한국축구의 월드컵 4강 신화가 그의 손에서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이운재(29·수원 삼성)가 '거미손'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한국축구를 월드컵 4강에 올려놓는 위업의 주인공이 됐다. 승부차기에서 진가를 발휘한 이운재는 연장전에 이르는 120분 동안 스페인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 승부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간 일등공신이었다.

잇따른 격전으로 선수들의 몸이 무거웠던 전반. 한국팀의 전매 특허인 미드필드에서의 압박은 위력을 잃었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던 수비조직력도 흔들렸다. 개인기를 앞세운 스페인 선수들은 파상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한국 골문에는 이운재가 있었다.

4강진출 1등공신 이운재 화보1 · 2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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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28분 데 페드로의 프리킥에 이은 모리엔테스의 헤딩 슛은 오른쪽 골문 구석을 향했지만 미리 방향을 읽은 이운재가 막아냈다. 전반 37분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데 페드로가 날린 대포알같은 강슛을 펀칭으로 쳐냈다. 평소 골문을 잘 벗어나지 않는 이운재지만 이날은 수비진의 몸놀림이 무겁다는 것을 알고 수비 범위를 넓혀 최종수비수 역할까지 겸했다.

이운재는 키커와의 수싸움에 능하고 예측력이 뛰어나 페널티킥 방어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 올해 초 북중미 골드컵 8강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도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눈부신 선방을 보여주며 4-2 승리의 수훈장이 됐다. 이운재는 평소 "내가 기억하는 한 승부차기에서 진 적이 없다"며 승부차기 불패를 훈장처럼 자랑한다.

수문장 자리를 놓고 김병지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다 월드컵 개막이 가까워 지면서 쾌조의 컨디션을 보여 주전을 꿰찼다. 16강전까지 4경기에서 2실점으로 막는 활약을 펼치고도 탄탄한 수비진에 가려 '저평가'됐던 이운재는 이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보이며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우뚝 섰다.

광주=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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