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최재천/토종 생물자원 주권 되찾을 때

  • 입력 2002년 6월 2일 23시 15분


필자는 최근 두 곳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하나는 개미의 장례식이었고 또 하나는 인간의 장례식이었다. 기계문명사회를 지배하던 인간과 자연생태계에 군림하던 개미, 지구의 그 두 지배자들이 공교롭게도 함께 절멸한 것이다. 한때는 참으로 잘 나가던 동물들이었는데. 삶은 그래서 덧없는 것인가 보다.

두 빈소의 모습은 무척 대조적이었다. 개미의 빈소에는 아침부터 조객들이 밀려들어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개미는 워낙 많은 다른 동식물들과 공생관계를 맺으며 살았기에 그들이 사라지면 생존의 위협을 받을 생물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빈소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그저 바퀴벌레들만이 아침부터 찾아와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동안 인간이 지어준 따뜻한 건물 안에서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이제 저 삭막한 숲으로 돌아가야 할 걸 생각하니 막막한 모양이었다.

이제 바야흐로 다음 대통령 자리를 놓고 두 막강한 후보가 본격적인 대결을 벌이기 직전이다.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 생각인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길지 않은 임기 동안 어떤 일을 가장 중요하게 추진할 것인지 알고 싶다.

이제 곧 이런 문제들에 대한 토론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두 분의 말씀에 아무리 귀 기울여봐도 필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생존에 관한 문제, 즉 환경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조차 없어 의아하다. 설마 전혀 관심도 없고 아무런 생각도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인류는 지금 전례 없이 심각한 환경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가 어쩌고 문화가 어쩌고 해봐야 다 부질없는 일이 될지도 모를 그런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필자가 다녀온 장례식이 머지 않은 장래에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심각한 처지에 있다. 요즘 서울이 솔직히 사람이 살 곳인가. 숨쉬기가 두렵지 않은가. 웬만큼 산 우리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공기로 허파의 구석구석까지 그을리며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어쩌려는가. 툭하면 경제를 들먹이는데 이렇게 크는 아이들이 다음에 부담해야 할 병원비는 생각해 보았는가. 지금 잘 살아보자고 마구잡이로 해치우는 개발 위주의 정책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쑥밭으로 만들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두 분은 이런 엄청난 환경 위기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학문이 생태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두 분은 우리나라에 아직도 국립자연사박물관이 하나도 없다는 수치스러운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생태학자들이 힘을 모아 8월 11일부터 18일까지 금세기 최초의 ‘세계 생태학대회’를 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들어보았는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인 기초생태 자료를 확보하는 사업과 우리 고유의 생물자원의 주권을 되찾는 사업을 추진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에게 살 만한 환경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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