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정몽준/세계의 축제 신명나게 즐기자

  • 입력 2002년 5월 26일 19시 17분


1993년 월드컵대회를 유치하자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월드컵을 하면 무엇이 좋으냐”고 질문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우선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88올림픽 당시 국민소득은 2800달러였다. 그때 주가지수가 500이었는데 1년 뒤인 89년에는 두 배인 1000을 기록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는 해도 국민소득이 거의 1만달러 수준인데 주가지수는 850을 오르내리고 있다.

89년 주가지수가 1000에 이르렀을 때는 자본시장이 개방되기 전이어서 순전히 ‘우리 토종의 힘’으로 1000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반면 지금은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많은 주식을 외국인이 갖고 있다. 그런데도 주가 수준이 낮은 것은 우리나라 국민이 미래를 불안하게 보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88올림픽 후 주가가 두 배로 오른 것은 국민이 자신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의 경제효과가 11조원이니 하지만 이런 숫자보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민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을 통해서 또 하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국가홍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기 소르망은 “유럽지역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이미지가 없는 나라다. 있다면 그것은 값싼 물건을 만들어 수출해서 먹고사는 나라다”라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도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극동의 나라 중 일본과 중국은 고유의 문화가 있고 한국은 없다”고 했다. 이번 월드컵 때는 연인원 420억명이 TV를 시청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여름휴가 한달 내내 TV 앞에서 산다는 이야기이므로 한국홍보는 저절로 되는 셈이다.

세 번째는 국민화합이다.

유럽 선진국인 스페인과 프랑스는 82년과 98년에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국민화합을 이루었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우리도 지역감정이나 계층간 갈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 유치를 통해 성취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한 점도 있어 아쉽다.

첫째, 북한의 참여 문제다.

월드컵을 개최하려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요구하는 여러 가지 요구 조건들을 갖춰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경기장에 기자석을 최소한 1000석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99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측 인사들이 이런 부분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느꼈다.

둘째,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별로 진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사 이래 최초로 거국적인 행사를 함께 치르면서 기대한 만큼의 관계개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계속되어온 경제불황 탓인지 일본의 외교는 국내 정치의 종속변수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드디어 월드컵이 열린다. 세계인의 축제인 이 기간만큼은 생활의 근심을 잠시 접어두고 축제를 즐기자.

정몽준 국제축구연맹 부회장 겸 한일월드컵조직위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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