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임재춘/과학기술연구원 연금 보장을

  • 입력 2002년 3월 1일 18시 36분


이공계 지망생이 줄어든다고 과학기술계가 비상이다. 이번에도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대책이 정부 내에서 활발하게 강구되고 있으나 제대로 효과가 나타나리라고 믿는 연구원은 적어도 내 주위에는 없다. 절망하는 연구원들, 자신이 초라하기에 자식이 이공계로 가겠다는 것이 부모에 대한 가장 큰 협박이라고 한다.

필자는 몇 년 전 프랑스의 파스퇴르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연구소장의 방이 작고 허름하여 의외였는데 벽에 거지 그림까지 걸려 있어 호기심을 자아냈었다.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전임 소장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연구소 출입문 앞에서 자주 구걸하는 거지를 그렸는데 연구소장의 처지와 비슷해 걸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소장만 거지같이 굴면 되는데 우리나라는 많은 연구원들이 앞으로 거지처럼 어려운 생활을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동안 진행된 구조조정으로 퇴직금 제도가 없어지고 중간 정산으로 받은 퇴직금은 자녀 교육 등에 이미 상당부분 들어가 정년퇴직을 하면 생계와 품위 유지가 막막할 지경이 된다.

그래도 정부 출연 연구소는 정년이 61세까지 보장되어 그나마 나은 편이나 민간 연구소의 경우 기업 경영이 나빠지면 우선적으로 연구원을 해고하기에 상황이 더욱 나쁘다.

30년 전 필자가 공무원을 시작할 때 연구원의 봉급이 일반공무원의 두세 배가 될 만큼 이들은 특별히 우대 받았다. 그 덕분에 한국은 오늘날 반도체, 자동차, 조선, 이동전화기, 원자력을 만들어 먹고사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는 연구원의 처지가 공무원보다 나을 것이 없어졌다. 이들이 당장 봉급은 조금 더 받겠지만 연금이 없어 미래가치를 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연구원이 그 사정을 아무리 호소해도 공무원이 실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더 비극이다. 필자도 과학기술부에서 공무원을 하면서 연구원의 하소연을 엄살로만 들었다. 그러나 대전에 내려와 2년이 지나고 나서야 필자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으니 비극 자체가 알려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연구원에게 미래가 불안하다면 이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연구원이야 거지같든(?) 말든 우리 사회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러나 변변한 기술이 없으면 장래 우리나라가 먹고 살 것이 없어지는 것이 문제다. 열악한 연구 환경을 두고 우리나라가 특정 연구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많은 돈을 투입해도 쓸 만한 연구원은 기회만 있으면 학교로 빠져나갈 것이다. 연구도 좋지만 연금과 65세 정년의 유혹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 딱 한가지, 민간과 정부 출연 연구원이 연금만이라도 별도로 받을 수 있다면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연구실을 지키는 연구원이 많으리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정부나 정치권이 연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지금 절망하고 있다.

임재춘(한국원자력연구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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