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강식/자유뮤역협정 새로 시작하자

  • 입력 2002년 1월 27일 18시 13분


현재 지구상에는 120여개의 크고 작은 자유무역협정이 있고, 각 협정의 회원국간 무역이 전 세계 무역의 42%(93∼97년)에 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어느 것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1998년 말 대외경제조정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에 착수하였고 태국, 뉴질랜드 및 일본과는 연구 단계에 있다. 지금까지 칠레와는 다섯 차례의 협상을 벌였는데 칠레가 막판에 가전제품 등 알맹이를 뺀 양허계획서를 우리에게 전달함으로써 협상이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자유무역협정은 우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자유무역지역이건, 유럽연합(EU)처럼 경제동맹이건 회원국 모두에서 순 무역창출(무역창출-무역전환)이 가능해야 체결이 용이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회원국들의 생산이 보완적이기보다는 겹치는 부문이 많아 경쟁적이어야 하고, 경쟁할 기업의 수가 많아야 한다. 둘째, 체결국 수가 많고 그들 간에 무역 등 경제교류가 많아야 하고, 셋째, 협정국간의 역사적 지리적 근접성이 크고, 끝으로 회원국간 무역장벽이 높고 비회원국에 대해서는 낮을수록 무역전환이 작아진다.

한국과 칠레의 경우에 대해 첫 번째 조건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 구리와 농축산물이 연간 수출의 약 50%에 달하는 1차 산업국인 칠레와 우리나라간에 무역협정이 체결되면 제조업부문에서는 물론 포도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농업부문에서도 경쟁이 일어나지 않아 새로운 무역은 창출되기 어렵다. 반면 무역협정으로 관세가 철폐되면 양국의 수입업자는 관세를 물지 않지만 그만큼 각국 정부의 관세수입이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칠레는 우리나라로부터 예컨대 자동차를, 우리나라는 칠레로부터 농산물을 더 많이, 더 싼 가격으로 수입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칠레는 우리나라로부터 예컨대 자동차를, 우리나라는 칠레로부터 농산물을 더 많이, 더 비싸게 사게 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칠레의 제조업자들과 한국의 농민들은 반발이 매우 클 것이다. 따라서 칠레의 제조업자들과 한국의 농민들은 반발이 매우 클 것이다.

물론 ‘도하 어젠더’와 같은 다자간 무역자유화계획이 실현되면 지역협정들의 효력이 떨어지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더구나 2005년까지 EU는 구 공산권 나라들을, NAFTA는 전 중남미 국가들을 영입할 계획이어서 기존 무역협정국들간의 무역은 더욱 증대될 것이므로 우리나라도 무역협정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크다.

그러면 어느 나라와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위에서 열거한 네 가지 조건의 통계를 기준으로 순위를 정해 본 결과 우리의 최우선 협상 대상은 기존 협정 중에서는 EU이고, 개별 국가로는 중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의 협상에선 농업부문이 최대의 걸림돌이 될 것인데 EU의 공동농업보호정책을 모델로 삼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NAFTA와 일본은 각각 EU와 중국 다음의 순위에 올랐지만 미국은 세계 최대 농산물 수출국이어서 우리나라 농민들의 반발이 클 것이고, 일본은 그렇지 않아도 높은 우리 제조업의 대일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의 무역협정에 관한 모든 정책을 재검토하여 위에서 열거한 최우선순위 내에 있는 기존 협정이나 나라들과 새로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박강식 동국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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