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라운드에서 망가지기 위한 조건

  • 입력 2001년 9월 28일 12시 00분


골프 라운드를 나가서 몇 번이나 망가지십니까?

핸디캡 15인 골퍼가 자기 핸디캡 보다 5개 이상 치면 일반적으로 ‘망가진다’라고 정의하겠습니다. 10회의 라운드 중 자기 핸디캡 보다 5개 이상 치는 횟수가 3번 이상일 경우엔 핸디캡을 재조정하여야 합니다만, 보통 한두 번 정도면 그저 “그날 망가졌어”라고 표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자신의 정확한 핸디캡을 모르는 것’입니다. 라운드에서 망가지기 위한 가장 확실한 조건은 자신의 핸디캡을 정확하게 모르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경우 자신의 실질 핸디캡 숫자에 비해 준거 핸디캡(referent handicap)이 낮은 경우를 많이 봅니다.

가끔 왕창 무너진 라운드는 아예 핸디캡 산출에서 제외시킵니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거하는 경우이지요. 그런데 (드문 일이긴 하지만) 아주 잘 쳤을 때는 핸디캡 계산에 포함시키는 아이러니를 보기도 합니다. 저 자신만 하더라도 그런 유혹을 받습니다. 자신의 핸디캡을 정확히 알면 스스로 ‘망가진 라운드’라고 생각할 일도 적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스로의 핸디캡이 15라고 ‘믿는’ 골퍼가 있습니다. 어떤 라운드에서 전반에 10오버를 쳤습니다. 그럴 경우 ‘오늘은 완전히 망가지는군…’ 하면서 후반에 더 잘 치려고 한다거나 아예 자포자기합니다. 두 경우 모두 스코어는 크게 줄어들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 골퍼의 경우 만일 실질적인 그의 핸디캡이 15개가 아니라 17개라면, 그리고 그가 17개임을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전반에 10개를 쳤으니 후반에 조금 분발하여 자신의 핸디캡을 복구할 기회는 충분합니다. 후반 9홀 동안 남은 여유 마진이 5개가 아니라 7개라는 것이죠.

문제는 뭐냐, 골퍼 자신이 (잘못된 핸디캡 인식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후반에도 망가져 준다는 것입니다. 골프는 즐거우라고 치는 것인데 볼이 잘 맞지 않고 스코어가 안 좋아 보일 때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고문하고 있으며 그런 경우는 상당수 ‘핸디캡 숫자’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즐겁게 골프를 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핸디캡을 정확히 아는 것이 비단 내기에서뿐 아니라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라운드가 ‘망가지는’ 이유는 이 역시 ‘자만심’이나 ‘자존심’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만, ‘잠시라도 골프를 깔보는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라운드 전 연습장에서 몇 차례 연습샷을 합니다. 연습샷을 하는데 샷이 너무 좋습니다. 게다가 최근 몇 차례의 라운드에서 특별히 망가지지도 않습니다. ‘오늘 동반자들에게 뭔가 보여줄 수 있겠군…’ ‘오늘 스코어는 아주 좋겠는데…’ ‘요즘 골프가 무척 쉬워 보이는군…’ ‘드디어 그 동안의 내 노력이 결실을 보는군…’ 이런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건방을 떱니다. 이런 날은 생각보다 스코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거나 아예 무너져 버립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난 역시 안 돼’라고 자책하는 날이 그날이죠.

가끔 이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연습장에 가보니 드라이버가 지 멋대로 날아간다, 퍼터를 최근 바꾸어 불안하고 아이언은 자꾸만 휜다… 그리하여 ‘오늘 작살나겠군…’ 하고 라운드에 들어가는데 스코어는 의외로 나쁘지 않은 날이 있습니다. ‘참, 이런 날도 있군… 허허’하고 생각하는 날이 그날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한 날, 날아갈 듯한 날에는 엄청나게 좋은 스코어가 나오기도 하는 반면 완전히 망가질 확률도 있습니다. 멘탈이 up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렇게 자신 있는 날 망가지는 메커니즘은 아주 쉽습니다. 한두 차례의 미스샷을 하여 스코어가 안 좋을 때는 평소보다 더 자책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컨디션에 이것밖에 못쳐??’라고 말이죠. 게다가 ‘연습장에서 잘 맞다가 실전에 나오면 그저 그렇단 말야..’라고 스스로의 골프를 안 좋은 방향으로 자꾸만 몰아가는 것입니다. 심리학 용어로 ‘negative reinforcement’라고 한다는군요.

반대의 경우, 연습장에서의 샷 감각이 좋지 않고 뭔가 불안한 날엔 한두 홀만 잘 맞으면 왠지 돈을 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positive reinforcement’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날은 전반을 조심하여 그럭저럭 넘긴 후 스코어 카드를 보면 의외로 점수가 나쁘지 않습니다. 후반에 펄펄 날 수 있습니다.

골프가 망가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동반자입니다. 동반자, 특히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하수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변수입니다.

몇 주 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동창회 시합에서 게스트로 온 사람이 있었는데 170야드 파 3홀입니다. 핸디를 주고 스킨스를 하였는데 그 홀은 마침 3개의 스킨이 넘어온 곳입니다. 세 명의 볼이 모두 온 그린. 게스트란 분은 비교적 초보자였는데 그가 친 볼은 오비구역으로 날아갑니다. 엇, 그런데 오비 날 볼이 나무를 맞고 러프로 떨어집니다. 러프로 떨어진 볼을 띄웠는데 그게 그냥 홀인 합니다. 버디를 한 것이죠. 다른 세 명은 파도 못했습니다.

다음 홀..

버디값을 한다고… 게스트가 친 볼이 오비구역으로 날아갑니다. 친구들이 “버디값 하는군…”하고 말하는 찰나, 그의 볼이 다시 나무를 맞고 페어웨이로 떨어집니다. 남은 세 명중 두 명이 오비.. 그 두 홀에서 저는 보기와 트리플을 합니다. 그렇게 망가집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엔 동반자를 원망하거나 자연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연을 원망하면 그 원망은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왜 하늘은 나에게만 불공평한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 역시 negative reinforcement가 됩니다. 그럴수록 동반자에게 “자연이 도와주는 것도 실력이야”라고 칭찬해 줍니다. 그 동반자는 미안한 마음도 있고 스스로 up 되기 때문에 알아서 무너져 주기도 하더군요. ^^

골프 서적이나 고수들의 이야기 중에 “망친 홀은 더 이상 생각하거나 연연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이겠으나 저에겐 현실적으로 참 지키기 힘든 말인 것 같습니다. 예컨대 ‘이번 홀에서 더블을 했으니 다음 홀에선 파를 해야 복구가 된다’라는 식의 강박관념이 좋지 않은 것은 알고 있으나 실제 라운드에서 그것에 연연하지 않기가 참으로 힘들더군요. 그것이 바로 수양의 정도가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망친 홀이 생각나면 그냥 생각나는대로 내버려 두라고.. 대신 다음 홀에서는 꼭 공을 끝까지 보고 쳐야 한다고…

그거 하나만 생각합니다. 파를 한다거나 멋진 샷을 날려 복구하겠다는 생각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합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결론은…

골프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과 겸허함은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스스로의 자긍심은 중요하지만 핸디캡에 관한 한 철저히 보수적이 것이 비단 스코어를 위해서만이 아닌 자신의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가을날에 보다 겸손해 지시고, 그리하여 보다 즐거운 골프가 되시기를 기원하며 물러갑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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