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나희덕/좋은 책들이 요절하고 있다

  • 입력 2001년 7월 31일 18시 28분


헌책방 주인과 인터넷 서점 주인이 나눈 대화를 읽으면서, 헌책방을 찾는 고객이 하루 20명 남짓이고 인터넷 서점을 찾는 고객이 하루 10만명 정도라는 말에 순간 아찔했다. 책의 유통에 있어 두 서점은 각각 아날로그적인 방식과 디지털적인 방식의 양극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둘은 구멍가게와 대형 할인점의 매출처럼 단순비교가 불가능한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곳을 드나드는 책과 고객의 성향을 분석해보는 것은 가능할뿐더러 오늘의 문화를 진단하는 데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구경해본 적은 있지만 한 번도 클릭해서 책을 사본 적은 없는 독자층에 속한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는 둔하면서도 책에 대해서만은 까다로워 몇 번씩 만지작거리며 내용을 검토해야 하고 일단 마음을 먹으면 당장 그 자리에서 사야 직성이 풀리는 조급증도 가지고 있다. 또한 책에는 속도와 물량으로만 잴 수 없는 고유한 정신의 부가가치 같은 게 있다는 믿음이 완강하게 남아 있기도 하다. 내가 온라인 서점보다는 오프라인 서점을, 대형서점보다는 헌책방을 즐겨 찾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햇빛과 먼지에 오래 묵은 책들이 뿜어내는 가지취(취나물의 일종) 냄새에 나는 어느새 길들여지기도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헌책방을 찾는 보다 실질적이고 절박한 이유가 생겼다. 불과 10년도 안된 좋은 번역서나 학술서들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지만 필독서나 다름없는 책들이 절판이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느끼는 위기감과 답답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석학의 전집조차 몇 년째 절판 상태일 정도이니 오늘의 부박한 지적 풍토에 결코 원인이 없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발품을 팔면서 그 책들이 혹시 나오지 않았나 헌책방을 전전하는 서글픈 습관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나름의 자구책으로써 학문의 대중적 소통을 모색하고 학제간의 연계를 높이는 최근의 성과들을 발견하곤 한다. 수평적이고 공시적인 대화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일정한 두께와 깊이를 지니기 위해서는 이전의 성과들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새롭게 해석해내는 일 또한 필요하다. 그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절판된 양서들을 선별하여 재출간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책들에 대한 수요란 그 필요성과 반비례할 것이기에 국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문화관광부 예산이 국가 예산의 1%를 밑도는 나라에서 그런 기대를 하는 게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새책 한 권을 만들 공력과 비용으로 이미 만들어진 책 몇 권을 다시 살려내는 일은 그 효율성으로 보아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요즘도 하루에 수백 종의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한쪽에서는 수많은 양서들이 사장되거나 폐기되고 있으니 이러한 일방통행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신간코너나 베스트셀러코너는 있으면서 지나간 양서를 재조명하는 코너는 없는 서점의 풍경은 왠지 중년의 나이에 퇴출당해야 하는 인력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것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는 풍토 때문에 한창 그 진가를 발휘해야 할 시기에 퇴물이 되기는 책이나 사람이나 같은 운명이다.

과연 헌책은 새책보다 낡은 것인가. 과연 50대는 30, 40대보다 낙후된 사람일 뿐인가. 과연 헌책방은 인터넷 서점보다 시대착오적인 공간에 불과할 뿐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그 역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지원하는 데 우리 사회가 너무 인색하고 단속적일 뿐이다. 헌책과 헌책방의 운명도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프랑스 센강을 따라 펼쳐진 명소였던 고서점들처럼 점점 관광기념품상에 잠식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인구 1300명이 사는 작은 도시에 30개가 넘는 헌책방들이 밀집해 있어 헌책의 메카로 부상한 영국의 ‘헤이 온 와이’도 있다.

근대 천문학의 기초를 마련한 케플러도 점성술사로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하지 않는가. 문제는 점성술이라는 깨지기 쉬운 달걀에서 어떻게 천문학이라는 병아리를 부화시켜낼 수 있는가이다. 내가 절판된 책을 찾아 헌책방의 먼지를 뒤적이고 다니는 것도 그 비슷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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