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안정환 이적 결말은?

  • 입력 2001년 7월 26일 17시 11분


안정환. 그의 이적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있다. 도무지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부산구단과 안정환선수의 매니지먼트사인 이플레이어즈 간의 줄다리기에, 연일 축구면을 도배해 가며 떠들어대던 스포츠지들도 요즘은 조용한 것을 보니 그들도 이젠 어느 정도 지쳐 가는 듯 하다.

지금까지의 사태의 전개상황이야 워낙에 언론에서 떠들어댄 관계로 생략하기로 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서로의 요구에 대한 필자의 입장을 적어본다.

먼저 부산구단은 자신의 구단이 얼마나 마켓팅에 대해, 또 축구에 대해 모르고 있는지를 자인해야 한다. 현재 부산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 물론 기업으로 볼 때는 매우 큰 기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고 그 기업의 가치나 매출 등 어느 모로 따지더라도, 비록 빅리그이기는 하지만 군소구단에 속하는 페루지아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축구만을 놓고 보면 사정은 완전히 틀려진다. 모기업의 경제력이나 기업으로서의 영향력을 따지자면 모르겠으나, 세계의 축구판에서의 부산구단은 페루지아에 비하면 구단 인지도나 구단 운영, 선수관리, 마켓팅 등 모든 면에서 어린아이와 어른 정도의 수준의 차이인 것이다. 더구나 그 구단행정의 핵심인 프런트들의 실권자들은 모기업이 교체되면서 들어온 이들로 이제 겨우 일년 남짓 축구판을 경험한 이들일 터,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다루던 마인드로 축구판에서 똑같이 적용하려 한다면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서로 수가 비슷한 국내구단도 아닌 자신들 보다 몇 수 위인 빅리그의 구단임에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부산구단이 선수의 성적은 무시하고 작년에 계약을 할 때 합의했다고 하는 ‘일년 후 이적을 원할 시에는 무조건 잔여 이적료 210만 달러를 지불한다’는 이면계약에 매달려 자신들의 주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오히려 현 상황에서 선수의 에이전트인 이플레이어즈와 힘을 모아서 협상을 성사시키려 하기보다는 선수와 그들을 상대로 무의미한 감정싸움으로만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니, 아마 모르긴 해도 이미 오랜 시간동안 선수 마케팅으로 그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는 페루지아로서는 적잖이 어이없어 하고 있을 것이다.

이면계약이라는 것이 사실상 법적인 효력이 거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부산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 예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몇 년 전 서정원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국내로 복귀할 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서정원은 해외진출시에 전 소속구단이었던 안양과 ‘국내 복귀시에는 무조건 안양으로 복귀한다’는 조건으로 당시 이적료의 일정 분을 받았다고 했는데, 결국은 안양 대신 수원으로 복귀하여 법정소송까지 간 것으로 알고 있다. 결과는 모두들 이미 아시다시피 서정원측의 승리였다. 당시의 자세한 판결문까지는 외우지는 못하지만 이면계약이라는 것이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한편, 안정환과 이플레이어가 요구하는 것은 한가지다. 무조건 페루지아로의 완전이적을 허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부산구단이 원하는 이적료와 페루지아가 제시한 이적료의 차이 때문인데, 안정환측은 지난 시즌 자신의 활약도에 비하면 페루지아가 제시한 이적료 100만 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 적절한 액수라는 것과, 한국축구의 발전과 2002년 월드컵을 위한 ‘대의(大義)’를 위해서, 그리고 부산대우시절에 약속이 되어있던 해외진출 보장이라는 이면계약에 의해 일단 보내달라는 주장이다. 돈이 문제라면 펀딩을 통해 이적료 차액을 채워주겠다고까지 한다.

지난 시즌 성적이 비록 자타가 모두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지만, 지난날 데뷔전 두골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한 나카타를 그저 부러운 눈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축구팬들에게 지난 일년 동안 긍지와 희망을 심어준 것과, 나카타와는 달리 경기 외적인 지원없이 철저히 혼자서 그 견뎌가며 이루어낸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면 손을 들어주고 싶은 일리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정환 또한 상황이 이쯤 되면 애초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 받으면서 뛰는 모습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번 시즌에 페루지아에서 임대가 아닌 완전한 그들의 선수로 뛰는 모습인지 이 시점에서 자신을 한번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후자의 경우는 분명 아닐 것이다. 또한 이미 유럽의 각 리그들의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페루지아를 제외하고 새로운 팀으로의 이적은 힘들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이적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차라리 일년 더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임대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페루지아로 완적이적을 하는 것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로서는 최선의 지름길이겠지만 그 길이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막혀있다면 돌아서라도 가야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 길을 막아놓았다 하여 열어주지 않으면 차라리 여기서 주저앉아 버리겠다며 은퇴라는 최후의 카드까지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칫 서로가 공멸하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일까. 얼마 전 페루지아가 결국 안정환을 배제한 채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을 떠남으로써 끝없이 파국을 향해 치달을 것만 같던 사태는 현재 갑자기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곧 안정환 본인과 이플레이어즈가 부산구단의 추천서를 가지고 직접 페루지아와 협상을 하기 위해 출국할 예정이라 한다. 또한 안정환의 출국에 대한 수속절차를 부산 구단측에서 지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모르나 아마도 아직 병역 미필자인 안정환선수가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소속 구단의 어떠한 동의 절차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고무적인 것은 사실상 얼마 전까지도 안정환의 매니지먼트인 이플레이어를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았던 부산구단의 변화된 태도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지금껏 서로의 입장에서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던 부산과 안정환측이 암묵적이나마 합의한 최초의 것이라는 점이며, 이것은 앞으로의 부산과 안정환측이 서로와의 협상과정에서 지금까지 보여 졌던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감정싸움이 아닌 서로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한 협상을 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물론 이번에 페루지아와의 협상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서로가 서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일일 것이다. 결국 안정환과 이플레이어즈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안정환선수 자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페루지아 잔류가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나는 것을 원한다면, 만일의 경우 페루지아에서 일년 더 임대로 뛰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난 일년간 임대선수로 뛰면서 벤치와 경기장 때로는 관중석을 오가며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는 오기로 어금니를 깨물며 거두었던 절반의 성공으로 한번에 많은 것을 얻으려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부산구단 또한 이번에 안정환 선수의 문제가 자칫 그의 선수생명에 치명타를 입히는 사태까지 되어버린다면, 아마도 차라리 지금의 안정환 측의 주장대로 안정환 선수를 페루지아에 100만 달러에 넘김으로써 맛보게 되는 굴욕감과 금전적인 손실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알고는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감정을 접고 그러한 현실을 인정을 하자는 것이다. 이미 그를 붙잡아 둘 수는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현실이 그러하다면 서로간에 더욱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이쯤에서 보내자. 대신 차후 국내 복귀시에 부산으로의 복귀나 페루지아에서 다른 구단으로 이적할 때 일정 비율의 이적료 배분을 보장 받는다든가, 서로 간에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조건 내에서 지금의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이끌어 냄으로써 어느 정도는, 혹은 어쩌면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보상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정환 선수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지난 일년 동안 한국에서의 보장된 안락함을 버리고 선택한 낯선 땅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그대를 버티게 했던 그 ‘열정’을 잊지만 않는다면 비록 지금 당장 조금 돌아간다 하여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충분히 더욱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대는 아직 젊다. 그것을 잊지 말자는 말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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