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경시대회 응시자수 고교별제한

  • 입력 2001년 7월 13일 18시 32분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이 대학이 주최하는 각종 경시대회에 응시하려는 수험생 수를 고교별로 제한해 논란을 빚고 있다. 대학들은 고교별로 학력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데다 응시자를 무제한으로 받을 경우 시험관리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현실적 여건을 들어 수험생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계 고교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반대론자들은 고교별 응시자 수 제한이 결국 특수목적고와 일부 명문고 재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치가 돼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박하고 있다.》

▼찬성/학력차 따라 다른 잣대 당연▼

2002학년도부터는 수시1학기와 수시2학기 그리고 정시모집으로만 대학 신입생을 뽑고 수능성적만으로 모집정원의 50%까지 선발하던 특차전형제도는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은 모집정원의 50%를 선발하기 위해 각종 전형제도를 창안해 내고 있지만 객관적이고 공정한 전형방법을 개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현행 입시제도에서는 대학들이 자체 본고사를 실시할 수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 내신만으로 학생의 우열을 가려야 한다. 내신성적은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비슷한 수준이고 동일한 평가척도를 갖고 있어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학 입시 관계자로서 느끼는 고교의 내신성적 부풀리기 실상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 여기에 특수목적고인 과학고와 외국어고, 비평준화 지역의 고교는 일반고교에 비해 학력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다양한 유형의 고교에 대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내신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은 대학마다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고교 수업을 정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각 고교들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유발하는 전형방법을 만드는 일은 대학의 책무이다.

현행 대학입시는 지나친 한 줄 세우기 방식이라는 비판에 따라 각 대학은 다양한 입시제도를 추구하게 됐고 그 결과로 각종 특별전형제도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들은 앞다퉈 각종 교과목에 대한 경시대회를 주최하게 됐고, 경시대회 종류만 해도 1000개가 넘는다.

각 대학은 수용시설, 채점능력, 관리능력, 특별전형 선발인원 등을 고려해 경시대회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따라 고교에 학생 추천을 의뢰한다. 이때 추천인원을 희망자에게 무제한 허용하면 시험관리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채점기간이 길어져 수시모집 일정에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인원이 많아지면 대회 주최 비용도 만만치 않아 소수인원을 선발하는 데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도 너무 커진다. 이에 따라 대학은 특정고교의 지원자 수나 합격자 수 등을 고려해 응시인원을 가감한다. 그 결과 실제 응시 결과를 보면 특목고의 응시인원이 일반계 고교보다 많은 실정이다.

특히 특목고는 경시대회 지원자를 주로 1, 2학년에서 선발하는 데 이들의 성적이 일반계 고교의 3학년을 능가하는 결과가 나온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모든 고교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또 다른 역차별이 아닐 수 없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지원자격을 부여하라는 논리라면 특별전형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수능성적만으로 선발해야 할 것이다. 농어촌 전형, 재외국민 특별전형, 취업자 전형, 장애인 특별전형 등 각종 특별전형은 모두 차별화된 기준을 갖고 있다.

월드컵 축구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대륙별 국가 수에 있어서 아시아나 아프리카는 유럽이나 남미보다 훨씬 적게 배정받는다. 실력의 차이 때문이다.

박용부(성균관대 입학관리팀장)

▼반대/형평성 잃은 대학편의주의▼

최근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력경시대회가 늘어나면서 수험생들은 너도나도 경시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경시대회 입상자들에게는 각 대학의 특별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경시대회가 응시할 때마다 3만원 정도씩 받는 전형료 수입을 위한 영리 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또한 각 대학은 다른 대학이 주최한 경시대회에서의 입상은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기준을 갖고 있어 경시대회를 또 하나의 본고사로 활용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더구나 내신성적 우수자가 경시대회 입상자와 겹치는 경우가 많아 경시대회마저 지나치게 성적 위주로 가는 것을 걱정한다.

이렇듯 경시대회의 효용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는 가운데 경시대회의 참가자 수를 고교별로 제한한다는 일부 대학의 방침은 대학측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근시안적인 것이 아니었나 한다. 고교 교사들은 이번 조치로 경시대회에 응시하고 싶은 학생이 시험에 참여하지 못하는 예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신입생 입학 실적에 따라 인원을 제한하면서도 고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인원을 늘려줄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시대회 참가자가 너무 많아 시험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대학측의 응시제한 이유는 좀 옹색한 측면이 있다. 사회적 파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학의 편의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벌 위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입시교육이 왜곡되고 ‘제한적인 대학의 자율성’ 때문에 대학측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알지만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조치를 꼭 취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번 조치는 그 동안 물밑에서 떠돌던 ‘고교등급제’ 논의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서울과 각 시도간, 평준화지역과 비평준화지역의 학교별 학력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같은 평준화지역이라도 학생들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를 배정받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대학이 중시하는 학생들의 ‘학력차’라는 것은 대부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사교육의 질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주입, 암기 위주의 입시공부 속에서 나타난 학력차가 경시대회 응시생 수를 학교마다 20∼30배수 정도로 제한할 만큼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학은 시험관리가 다소 어렵더라도 응시자 수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정 시험관리가 문제가 된다면 경시대회를 없애는 것이 차라리 옳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교육인적자원부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다. 대학의 자율성은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학들은 교육비 부담의 비율이 공적 영역에서 점차 학부모의 사적 영역으로 옮아가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느끼는 상대적 소외감과 박탈감을 덜어주는 고려를 해야 한다. 사회가 대학에 거는 기대가 다소 무겁더라도 짊어지고 가는 것이 대학의 사회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김정명신(서초강남 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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