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24시]유실물센터… 별별사람 별의별것 다 놓고내려

입력 2001-01-22 16:39수정 2009-09-2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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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도 광택 나는 C사 자주색 가죽핸드백. 재작년 10월 지하철 2호선에 주인이 놓고 간 뒤 지금까지 시청역 유실물센터 선반 위에 있지. 나의 주인인 이모씨(24·여)는 아직 감감 무소식이야. 잃어버린 지 1년6개월이 지나면 경매에 부치든가 복지단체에 기증한다는데….

유실물센터에서 나의 주인을 찾으려고 얼마나 뛴 줄 알아. 일단 내가 품고 있던 이씨 주민등록증에 적힌 거주지(서울 중랑구 중화2동) 동사무소로 연락했지. 전화번호를 알아내려고. 동사무소에서는 “공문을 보내달라”고 하더군. 그래서 이곳 직원이 직원증 사본을 붙이고 이씨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협조문을 보냈어. 그리고서 전화했더니 그런 사람이 없다더군.

더 뒤지니 헬스클럽 회원증이 나왔어. 이번엔 그곳 강사가 ‘이씨 요즘 안 나오는데요’ 하더라고. 경찰에도 조회했지만 확인이 안돼. 아무래도 바다 건너 간 모양이야. 이 정도면 주인 만나기는 물 건너 간 거래.

유실물의 화상정보까지 싣는 인터넷사이트(www.lost114.com)도 있지만 여긴 신분증이나 메모 같은 주인을 찾을 ‘단서’가 없는 것만 올린다는군. 그러니 나는 여기도 기댈 수가 없지.

어쨌든 유실물센터에 1년3개월 있다보니 사람들이 확실히 정신 없이 살고 있다는 게 한 눈에 들어오더라고. 유실물 접수는 물론 물건을 찾겠다는 연락도 매년 늘지.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더라고.

신혼여행 사진첩을 통째로 잃어버렸다가 한달 만에 되찾은 얼빠진 신랑, 프리젠테이션 자료가 담긴 노트북PC를 잃어버려 시말서를 쓰기 직전까지 갔던 30대 중반 대만인 M씨…. 얼마 전엔 제대한 지 일주일 된 예비역 병장이 군대에서 받은 연애편지 뭉치를 1주일 만에 찾아갔고, 설날 고향 부모님께 드릴 선물꾸러미를 잃었다고 사색이 된 중년 아저씨도 봤어.

요즘 계속 들어오는 ‘후배’ 중에는 작업복이 담긴 가방이 많은데 아무래도 경기가 안좋으니 막일꾼이 많이 늘어난 모양이야. 밤에 한잔 걸치고 내려놓는 거지 뭐. 설 기분이 나지 않긴 지하도 마찬가지야. 서울 지하철의 11개 유실물센터에서 열심히 찾아주고 있지만 막무가내식으로 ‘내 물건 찾아내라’는 사람도 많아. “어젠가 그젠가 4호선 과천 근방에서 대충 정오쯤인 것 같다”는 식이면 참 난감하지. 물건을 놔두고 내린 역과 시간은 기본. 몇번 째 차량이었는지도 알면 금상첨화지.

이런 걸 알아도 탔던 전동차가 연착이라도 하면 유실물센터에서는 연착시간만큼 앞뒤 전동차를 뒤져야 하니 찾을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그리고 제발 아무 유실물센터에나 전화하지마. 노선마다 다 틀리거든.

아무튼 잘들 찾아가시라고. 그나저나 나는 4월이면 와도 못찾는대…. 주인님, 빨리 오세요.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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