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4시]"객차서 매일 아침운동 하죠"

  • 입력 2001년 1월 7일 18시 55분


“지하철은 ‘움직이는 스포츠 센터’입니다.”

지하철을 이처럼 색다르게 정의하는 대림산업 유영우(劉榮佑·53) 플랜트 영업부장. 그의 하루 일과는 언제나 지하철로 시작된다.

오전 6시50분이면 어김없이 서울 서초동 집을 나선다. 2호선 교대역까지 걸어서 10분. 영등포구청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여의도역에서 내려 7, 8분 걸으면 회사다.

집을 나서 걸린 시간은 정확히 1시간. ‘러시아워’만 아니면 승용차가 더 빠르다. 10㎞ 남짓한 거리를 지하철이 25㎞ 이상 에돌아 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지하철을 고집한다. 퇴근도 마찬가지. 영업차 외출할 때도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1호선 개통 때부터 탔으니 벌써 27년째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지하철로 해결하고 있는 셈.

그 사이 지하철도 엄청나게 변했다.

70년대 중반 신혼시절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할 때만 해도 전동차안은 정말 ‘콩나물시루’였다. 발을 바닥에 딛지 않고도 서 있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회고. 여름철이면 전동차는 ‘사우나’ 그 자체였다. 열풍을 뿜어내는 선풍기는 아예 돌지 않는 게 나을 정도였으니.

그는 85년 승용차를 마련했지만 주말 가족나들이에만 쓴다. 유부장이 지하철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의 ‘지하철 체조론’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가운데 가장 손쉬운 것은 ‘손가락 힘 기르기’. 전동차 안의 철봉을 검지와 장지, 약지 등 세 손가락으로 잡고 발을 바닥에서 1㎝ 가량 살짝 들어올린다. 이를 반복하면 손가락 힘이 강해져 그가 즐기는 볼링점수도 절로 올라간다는 것. 그의 평균점수는 160.

골프를 한 뒤 허리가 아픈 사람에게 권하는 운동은 ‘허리 휘어주기’다. 이는 양손으로 가로와 세로 철봉을 잡고 전동차가 정지하거나 출발할 때 전동차의 쏠림 방향에 맞춰 허리를 휘어주는 것.

이 밖에도 ‘발 앞뒤꿈치 들어주기’ ‘손목 비틀기’ ‘철봉 밀어올리기’ 등 유부장이 고안한 운동방식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그의 운동은 전동차 밖에서도 계속된다. 아무리 긴 환승역이라도 그는 꼭 계단을 이용한다. 보통사람들에겐 ‘고통’일지 모르지만 그에겐 되레 ‘운동의 기회’다. 영등포구청역의 환승계단이 114개, 여의도역의 계단이 196개라는 사실도 굳이 외워서 안 게 아니다.

50대 초반인 그는 요즘도 자신이 고안한 체조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몸무게는 지하철을 처음 타기 시작한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60㎏. 군살을 찾아볼 수 없다. 주말 등산 땐 30대 젊은이보다 체력이 낫다.

그는 당연히 ‘지하철 예찬론자’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남에게 지하철을 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회만 오면 지하철의 장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그는 분명 ‘최장기 지하철 이용객’의 한사람일 뿐만 아니라 ‘진짜 지하철맨’이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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