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수채화 같은 소년만화<영원의 들판>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0시 25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재혼한 어머니에게서 분가하여 누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니타로는 평범한 고등학교 남학생이다. 그 또래가 그렇듯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어 괜히 의식하게 되는 말괄량이 여학생이 주변에 있고 죽어버린 개 '카키'가 그리워 슬픈 꿈을 꾸기도 한다. 니타로에겐 또 자신이 지켜줘야 하는 누나를 생각하며 용기를 다지는 대견한 구석도 없지 않다. <영원의 들판>은 이런 니타로의 성장기를 아름답게 그려나간다.

점잖고 영리하던 '카키'와 여러 모로 비교되는 제멋대로인 조그만 강아지 '미캉'을 키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평화롭던 니타로의 일상은 변해간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던 동급생이 사실은 자신의 친구를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되고 누나를 지켜주던 자신의 자리를 누나의 애인에게 빼앗기면서 니타로는 상심한다. 누구 하나 악한 마음으로 서로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데, 왜 소년 소녀들의 성장은 이렇게 아프고 괴롭기만 한 것일까.

<영원의 들판>은 말한다. 과거에는 모르던 사실, 중요하지 않던 사실에 눈을 뜨게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면서 어른이 되기 때문이라고. 사랑과 고통은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영원의 들판>은 '사랑'으로 성장해 나가는 소년 소녀들의 변화를 직설적이거나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일본의 중견작가 오사카 미에코는 이 만화에서 사실적인 상황전개,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는 대사, 일상적인 고민으로 한숨 짓는 캐릭터의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이야기를 끌고간다.

단순한 주제를 긴 호흡으로 풀어가기 때문에 지루한 감도 없지 않지만 오사카 미에코의 만화는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우며 보는 이를 애달프게 만드는 마법 같은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니타로의 성장은 뭐든지 할 줄 알던 '카키'에 비해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철부지 '미캉'을 키우면서 시작된다. 여기에는 흘려넘길 수 없는 상징이 도사리고 있다. 받기만 하던 애정을 누군가에게 주기 시작할 때 '사랑'은 시작되고, 타인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내 자신의 이야기인 듯 애처로운 마음으로 숨 죽이고 지켜보게 되는 작품이 <영원의 들판>이다.

김지혜<동아닷컴 객원기자>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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