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한국영화,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 입력 2000년 6월 10일 09시 49분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최근 1,2년 사이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보여 온 한국영화가 올들어 잇따라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영화계 일부에서는 이런 추세대로라면 지난 해 객석점유율 40%선 수성은 고사하고 자칫 메이저급 영화사들의 잇단 부도 사태까지 우려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올해 개봉된 한국영화 가운데 <반칙왕> 단 1편만을 제외하고는 흥행에서 성공한 작품이 없으며 더 큰 문제는 하반기 들어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반등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 있다.

영화계가 뭔가 한 작품이 터져 주기를 기대하는 것도 극장가의 이 같은 바닥 장세를 뒤집을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같은 역할은, 98년에는 <타이타닉>이 또 99년에는 <쉬리>가 맡았었다.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개봉된 한국영화는 20여편. <학교전설>에서 부터 <행복한 장의사>, <천일동안>과 <인터뷰> 등에서부터 현재 개봉중인 <비밀>과 <킬리만자로> <동감> <오! 수정> 등까지다.

각 영화사가 집계한 관객 동원 수치는 제작사별 입장에 따라 약간의 오차를 보이고는 있지만 극히 저조한 흥행수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만큼은 공통적이다. 이들 가운데는 서울 관객수가 1000명을 훨씬 밑도는 작품까지 있어 충격을 준다.

흥행성적의 심각성은 이른바 메이저급 영화사로 분류되는 시네마서비스와 우노필름의 작품이 기대치를 훨씬 밑도는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데서도 찾아진다 .

시네마서비스가 투자했거나 제작한 작품은 모두 5편. <학교전설>과 <주노명 베이커리>, <플란더스의 개>, <인터뷰>와 <비밀> 등이다. <학교전설>은 서울 관객수가 5000명 아래였으며 <주노명 베이커리>는 4만5000명, 우노필름이 기획하고 시네마서비스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플란더스의 개> 역시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또 어느 정도 흥행이 예상됐던 <인터뷰>까지 17만명선에서 그쳐 상반기 흥행 집계의 낮은 수치에 한몫을 했다. 이는 모두 서울 관객수를 집계한 수치다.

우노필름의 경우 편수조차 극히 빈약한 실정이다. <플란더스의 개>를 기획한 것 외에 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배급한 <행복한 장의사> 정도가 고작이다. 그나마 두 작품 모두 흥행에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행복한 장의사>의 경우 예상외로 부진한 성적을 보여 서울 7만5000명을 기록했다.

두 영화사 모두 상반기 실적이 이처럼 저조한데는 본업인 영화제작말고 '외도'에 바빴기 때문. 시네마서비스는 미국 월가의 투자금융사인 워버그 핀커스로부터 200억원의 자본을 유치했으며 우노필름은 인터넷 업체 라이코스와 함께 새로운 회사 '사이더스'를 설립했다.

지난 6개월동안 이들 영화사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업체로 변신하기 위한 조직 개편 작업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왔으며 결과적으로 여기에 신경을 쓰느라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셈이 됐다.

상반기 20여편 작품의 흥행실적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서울 관객수가 1만명 이하인 작품만도 7편이나 된다.

관객 수 조사는 현재 영화진흥위원회가 가장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반 공개는 미루고 있다. TV 시청률이나 신문 판매부수처럼 흥행 수치 공개 역시 자칫 영화사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조사 결과 공개를 극장들이 입장권 전산망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로 미룰 생각인 것처럼 보인다.

하반기 국내 영화들이 발군의 실력을 선보이지 않는 한 올 한해 국내 영화산업의 전망은 매우 어둡다. 국내 경기전망의 불투명성, 특히 현재 영화계의 뒷돈 역할을 하고 있는 금융자본의 불안정성 등은 2000년 한해의 국내 영화계 행보가 그리 순탄치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주식에도 바닥장세란 것이 있듯이 영화계도 이미 바닥을 쳤다는 분석도 있다. '이 보다 더 나쁠 수 없다'란 말은 역설적으로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여름시즌을 겨냥해 개봉되는 <해변으로 가다> 등 공포영화와 <비천무>와 , <단적비연수> 등 비교적 '큰 영화'들의 선전에 기대가 모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동진(ohdjin@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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