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윌리엄 패치/함께 사는 지혜가 필요한 때

  • 입력 1999년 10월 5일 19시 37분


26년전 신의 소명을 느끼면서 아내와 나는 세살과 일곱살 두 딸을 데리고 처음 한국에 왔다. 당시 한국은 여전히 후진적인 농업사회였다. 대부분 작은 하천에는 다리가 없어 선교사들은 시골 교회를 찾아갈 때마다 지프를 타고 갔다.

짧은 기간에 한국은 고도 산업화 사회로 탈바꿈했다. 한국의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의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도로 교량 빌딩은 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다. 한국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 형제자매들은 참으로 우리 가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몇 년동안 내 차는 수시로 고장이 났다. 보통 그럴 때면 낯모르는 한국인들이 고장난 부분을 점검해주기 위해 다가오는데 항상 차 본네트 아래 공간이 비좁을 정도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와 도와주었다. 이웃 사람들은 항상 우리 집을 지켜주고 아이들을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보살펴 주었다. 지금도 이웃들은 김치나 별미를 만들면 맛보라며 나눠준다. 언어나 문화 차이 등으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언제나 이런 친구들과 이웃의 도움에 의지할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정신을 갖고 있다. 차를 운전하면서 그들은 안전의 한계점까지 시험하는 것 같다. 사고로 인해 해마다 재활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겨난다. 일과 관련해서도 한국인들은 성공 가능성이 적은 벤처기업에 많이 도전하지만 아직까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같다.

요즘 나의 주요 관심사는 재활문제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인상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몇 년전만 해도 ‘특별한 한국 시민들’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집안에만 갇혀 살았다. 지금은 각종 매스컴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육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통로, 주차장, 화장실, 점자나 목소리로 운행되는 엘리베이터 등은 모두 이같은 노력의 소산이다.

한국은 ‘큰 것’에 대한 욕망을 가지는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크고 극적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삶이 모두 크고 특별할 수 는 없다. 중소기업이 있어야 대기업이 존재한다. 소규모 대학도 큰 대학에 못지않은 훌륭한 교육센터가 될 수 있다. 한국인들은 한번에 한 걸음씩 나가면서 장기적 안목으로 일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인내심을 토대로 꿈을 간직하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모든 단계가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아주 흥미롭다. 하지만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타인의 권리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이 타인의 권리와 고아, 여성, 어린이와 노인들의 권리를 지키는 데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훨씬 더 성공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26년동안 살면서 아내와 나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업무때문에 해외에 갔다가 돌아올 때면 나는 ‘이제 집에 오는구나’라고 중얼거린다. 내가 예수와 한국 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더 없이 큰 행복으로 느끼며 산다.

윌리엄 패치(한국명 백위열·나사렛대총장)

▼약력 △66년 미국 이스턴나사렛대 졸업(심리학전공) △68년 세인트로렌스대 석사(교육학) △71년 로체스터대 석사(상담 전공) △73∼75년 한국 나사렛신학원 강사 △76∼91년 나사렛신학원장 △91∼96년 나사렛선교회 의장 △97년∼현재 나사렛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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