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키드]국내 유치원 교육 사례

  • 입력 1999년 8월 23일 18시 50분


“선생님 많이 보고 싶어요. 빨리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어요. 선생님 저 파마도 했고 손톱에 봉숭아물도 들였어요. 개학날 선생님 만나면 볼에다 뽀뽀할 거예요.”

26일 개학하는 서울시내 한 유치원의 인터넷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국내 유치원도 컴퓨터가 없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시설은 수준급이다. 그러나 교육프로그램은 천차만별.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특성과 발달과정에 맞춰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교육을 펴고 있는 서울시내 대학부속 유치원 3곳을 살펴보았다.

◆여러가지 기분

덕성여대부속 유치원 4세반 아이들은 5월중순 ‘친구의 기분 조사하기’놀이를 했다. 혜수(이하 어린이 이름은 가명)가 뾰로통한 표정의 아이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자 옆에 있던 수정이는 호수에게 물었다.

“이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니?”

“화가 난 것같기도 하고 짜증난 것 같기도 해.”

“너도 그런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니?”

“응. 정혜가 미끄럼틀을 혼자만 타려고 했을 때.”

“그때 어떻게 했는데?”

나머지 아이들도 그런 느낌이 들었을 때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렸다. 또 그림 속 인물들의 대사를 만들어 냈다.

수미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했다. “정호가 정리시간에 블록을 치우지 않아 제가 화를 내고 있어요. 정호는 저에게 ‘왜 놀지 않고 가만히 있니’하고 말하고 있어요. 제가 말도 않고 화를 내는 것보다 정호에게 함께 정리하자고 말하고 함께 치웠다면 금방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 거예요.”

이 유치원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정서지능 향상 프로그램’. 신은수원장(덕성여대 유아교육학과 교수)은 “앞으로는 머리좋은 아이보다 자기감정을 조절하고 남의 감정을 잘 파악하며 남과 잘 어울리는 아이가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세기에는 지적 능력 못지않게 정서지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나무를 찾아라

중앙대부속 유치원 5세반 아이들은 6월초 소그룹으로 나눠 산책을 나갔다. 우혜진선생님은 미리 나무사진을 보여주었고 아이들은 사진속의 나무를 찾아 주의깊게 관찰했다.

“나뭇잎이 사진속의 나뭇잎과 똑같애.”

“까치가 나뭇잎과 놀고 있어.”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큰 종이위에 잎사귀 꽃 열매를 늘어놓고 나무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런데 까치가 없잖아.”

정우의 말에 아이들은 잠시 잊었던 까치생각을 하게 됐고 다음 산책때 먹이를 갖다 주기로 했다.먹이를 준 다음날.

“비가 와. 먹이가 다 젖겠네.”

“까치가 먹이를 먹었을까?”

“걱정마. 물도 먹을 수 있으니까.”

가영이의 말에 모두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나무에게 그림을 그려 선물하는 날. 아이들은 먼저 종이컵에 든 까치먹이가 확실히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깍깍.” 까치울음소리가 들렸다.

“저 까치가 먹이를 줘서 고맙다고 말하나 봐.”

해성이의 말에 아이들은 미소를 지었고 나무 위엔 아이들의 그림이 넘실거렸다.

이 유치원의 교육방침은 유아중심의 주제선정 및 교육체제. 허미애원감은 “교사가 활동(자연탐구)을 모두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유아도 활동 중간중간에 자신의 생각(나무 재현하기, 까치 먹이주기, 나무에 선물하기)을 더한다”며 “이 과정에서 아이의 문제해결력과 창의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

이화여대부속 유치원 5세반 아이들은 5월하순 과일껍질 비닐봉지 생선뼈 플라스틱장난감조각을 들고 유치원 앞마당에 모였다. 흙이 담긴 커다란 화분에 묻으며 선생님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들은 어떻게 될까”하고 물었다.

“생선뼈는 작게 부서질 것 같아요.”

“장남감 조각은 딱딱해서 그대로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무엇을 묻었는지 알 수 있도록 팻말을 써서 꽂았고 아이들은 흙에 묻는 것들이 어떻게 될 지 그림으로 그렸다.

7월중순 아이들은 선생님이 흙을 파는 것을 지켜보았다. 모두 숨을 죽였고 눈에는 호기심이 그득했다. 과일껍질과 생선뼈는 온데간데 없었지만 플라스틱장남감과 비닐봉지는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경미원감은 “예측능력은 물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환경교육과 소비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5세반 아이들은 빈상자로 동네를 만들었다. 우유팩과 과자상자로 집을 만들고 도로와 기찻길을 그렸다. 아이들은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상상놀이를 했다. 이 유치원의 특징은 생활중심 교육. 나와 가족, 지역사회 속에서 주제를 잡아 더 많은 것을 스스로 공부하고 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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