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쫄깃한 수다]인간승리? 껍데기는 가라

  • 입력 2007년 4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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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삶은 꼭 극적으로 그려져야 하나? 영화 ‘파란 자전거’는 그 반대의 길을 택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삶은 꼭 극적으로 그려져야 하나? 영화 ‘파란 자전거’는 그 반대의 길을 택한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지난주 영화 ‘파란 자전거’(19일 개봉)의 시사회 날, 영화가 끝나고 감상을 묻는 홍보 담당자에게 “너∼무 잔잔하다”고 말하고는 들른 기자 간담회 장소였다.

권용국 감독이 입을 열었다. “어느 날 영화 보고 나오다 속상해서 일주일 만에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삶이라고 그렇게 극적이지 않아요. 과연 그들이 영화처럼 장애를 극복했을까요. 극복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고 그 아픔을 가지고 사는 것인데, 영화가 ‘상품’이다 보니 지나치게 과장되는 것 같습니다.” 이때였다. 얼굴이 붉어진 것은.

상영 전 무대 인사에 올라온 감독은 “나와 닮은 영화를 만들면서 아프기도 기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리가 불편했다.

취향에 따라 이 영화가 재미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의 말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 ‘뭔가 빠진 것 같았던’ 그 느낌의 정체를 알았다. 주인공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 봤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불굴의 의지로 노력해 결국 장애를 극복하는 인간 승리의 감동’을 기대했던 것이다. 보면서 ‘저런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하며 멀쩡한 나의 안일함을 탓하며 한편으론 위안받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는 손을 잃고 의수를 낀 채 살아가는 주인공 동규가 ‘손이 없어도 코로 뭐든지 할 수 있어’ 좋은, 코끼리 사육사로 살아가는 얘기다. 결혼 문제로, 동물원이 없어지고는 취직 문제로 고민하지만 동규의 장애는 다른 영화처럼 심한 것도 아니었고 장애에 초점이 맞춰지지도 않았다. 그의 슬픔은 과장돼 있지도 않고 대단한 결말도 없다. 다만 가족과 주변인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희망을 얻을 뿐이다.

다음 날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아픔을 극복하라고 하는 게 싫었다”고 했다. “장애인들은 열심히 살고 싶어도 그럴 환경이 안 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도 했다. 물론 ‘포레스트 검프’ 같은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전 세계에 한두 명이다. 그래서 영화 속 동규는 17년 동안 ‘발전 없는 성장’을 한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동규가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에게 술김에 “힐끔힐끔 쳐다보지 말고 똑바로 봐!”라고 하는 것. 그건 감독 자신의 상처였다. 쇼윈도에 비치는 자기 모습이 싫어 피해 다녔고, 길을 가다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왜 쳐다보냐”고 따지기도 했다. 쳐다보지 않는 게 그렇게 힘든가. 가족이나 친구처럼 똑바로 봐 주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무관심해지길. 그게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도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편한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앓은 열병의 후유증이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장애인의 가족이 될 수도 있는데, 왜 내 사위로는 안 되고 내 직원으론 안 될까요.” 너무 옳아서, 대답할 말이 없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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