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늙은 오빠 임자 만났네 '사랑할 때 버려야…’

  • 입력 2004년 2월 10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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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 Gotta Give)의 제목을 패러디한다면 아마도 ‘해리가 에리카를 만났을 때’가 딱 어울릴 법 하다. 롭 라이너 감독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년)가 젊은 세대의 사랑을 그렸다면 ‘사랑할 때…’는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할 나이에 접어든 세대의 사랑을 담았다. 극중 분위기로 따지면 20년쯤 차이가 날까. 하지만 ‘해리가 샐리를…’에 나오는 해리(빌리 크리스탈)와 샐리(멕 라이언), 또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해리(잭 니콜슨)와 에리카(다이앤 키튼)를 괴롭히는 것은 똑같다. 만남과 이별, 바로 사랑이란 단어다.

캐릭터부터 보는 게 어떨까. 해리와 에리카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서 기억할 만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음반사 사장인 63세의 해리(잭 니콜슨)는 ‘영계 전문’ 플레이보이에다 결혼을 피해 살아온 미꾸라지 같은 독신남. 여성의 스타일은 가리지 않지만, 단 20대가 넘으면 사귀지 않는다. 비아그라를 휴대하고 별장에서 마린(아만다 피트)의 어머니 에리카와 마주치자 “내가 딸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차라리 도둑이면 좋겠죠”라고 내뱉는, 미워할 수 없는 유머감각의 소유자다.

다이앤 키튼

56세의 유명한 희곡 작가인 에리카는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인물. 스스로 ‘시든 꽃’으로 여기지만 섹스 중 목까지 올라온 ‘터틀넥’이 방해되자 “망할 터틀넥이 속 썩이네. 잘라 버려요”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을 감추고 있다.

영화가 처음부터 두 사람의 사랑을 우직하게 내세웠다면 무척 단조롭고 건조했을 것이다.‘왓 위민 원트’를 연출한 여성 감독 낸시 마이어스는 나이와 성(性)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면서 사랑에 관한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는 재치를 보여준다. 나이든 남자와 나이든 여자의 사랑 앞에 나이든 남자와 젊은 여자, 젊은 남자(키아누 리브스)와 나이든 여자의 사랑을 끼워 넣은 것.

먼저 60대의 남성 해리와 20대 후반의 매력적인 경매사 마린이 나누는 대화를 보자.

“자신의 명성을 몰라요?”(마린)

“무슨?”(해리)

“20대만 사귄다는….”(마린)

“나이든 여자들이 날 안 만나 주는 거야.”(해리)

젊고 잘 생긴 의사 줄리안과 에리카의 대화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몇 살이죠?”(에리카)

“서른여섯.”(줄리안)

“내가 20년 연상이네.”(에리카)

“난 상관없어요. 이 정도로 끌린 적은 없어요.”(줄리안)

물론 관객들은 도입부에서 해리와 에리카의 만남을 보면서 결말을 짐작하지만 그래도 영화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사랑을 위해 무언가를 버릴 때 아까운 것은 없다’는 것.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여성성’을 버린 에리카나 평생 섹스를 사랑이라고 착각해온 해리 모두 진정한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미국의 한 잡지는 자유분방한 니콜슨의 사생활을 떠올리며 “잭 니콜슨이 잭 니콜슨을 연기했다”고 평가했다. 키튼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됐다. 해롱대는 해리의 뒷모습을 놓치지 말 것. 니콜슨의 반나(半裸)를 볼 드문 기회이니까.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영화속의 이 대사…▼

“우리 아직 섹스는 안 한 거지?”

“네, 안했어요. 분명히”

“살 목표가 생겼군”

(해리와 마린의 대화)

“63세, 여자가 그 나이에 독신이면 조롱거리지만 남자는 잡지에 등장해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각광받죠.”

(에리카의 여동생 조가 해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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