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테마무비]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 입력 2001년 2월 25일 18시 03분


<어둠 속의 댄서>
페미니스트들은 모성 신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많지만 우리 모두가 '어머니의 자식'인지라 그녀들의 이름을 쉽게 잊긴 힘들다. 영화는 물론이고 연극 문학 음악 등에서 나타나는 '모정의 세월'은 그렇게 지나갔고 여전히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 2000)는 가장 최근 우리 곁에 찾아온 '엄마 이야기'다. 미국 워싱턴 주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셀마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그녀가 지닌 어두움의 유전자는 아들에게도 전해졌고 셀마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들의 수술비를 모은다.

작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이 영화에 대한 격렬한 비난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 영화에 쏟아진 찬사는 셀마 역을 맡은 비요크의 '감동적인'(그녀의 연기력을 설명하기에 이 단어는 너무 진부하다) 연기와 뮤지컬이라는 고전적 장르를 디지털과 결합했다는 실험성 때문이겠지만, 이야기의 작위성과 눈물에 대한 지나친 강요, 도그마 선언에 대한 스스로의 위반 등은 분명 비난의 초점이었다. 특히 마지막 교수형 장면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관객을 고문하듯 몰아친다.

이와 비슷한 모성애 신화 중엔 <미워도 다시 한 번>(68, 정소영)이 있다. 한 남자가 서울에서 혜영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둘은 사랑하고 여자는 임신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아뿔싸, 남자에겐 이미 마누라가 있었고 혜영은 눈물을 삼키며 떠나 그 남자의 아이를 홀로 키운다. 하지만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쉽지 않았고 8년 후 성공한 그 남자에게 아이를 보내는데 아이는 "엄마, 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라며 칭얼거린다. 이 영화의 압권은 '빗속의 눈물' 장면. 당시 아줌마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기어이 극장을 눈물 바다로 만들고 말았다. 그녀들에게 <미워도 다시 한 번>은 결코 남 얘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Todo sobre mi madre, 99) 또한 그 무엇보다도 헌신적이며 위대한 모성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모성 드라마에 동성애 코드를 삽입하고 할리우드의 고전 걸작 <이브의 모든 것>을 겹친 '풍부한 텍스트'다. 마누엘라는 아들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헤어졌던 남편을 찾아가지만 그는 여장남자가 되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수녀 로사는 임신중이었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여장남자가 된 전남편이었다. 여기서 마누엘라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녀는 임신중독증으로 아이를 낳다 숨진 로사의 아이에게 죽은 아들의 이름인 '에스테반'을 붙인다. 그리곤 아들의 죽음을 초래한 장본인인 여배우 위마를 만나지만 오히려 그녀의 친구가 된다. 모성은 이토록 위대하기만 한 것일까? 적어도 이 영화 속에서는 그렇다.

영국의 좌파감독 켄 로치는 영국 복지정책의 허구를 비판하는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Ladybird Ladybird, 94)에서 아이들의 양육권을 찾기 위해 투쟁하는 한 '어머니'와 그녀에게 '자격 미달 어머니'라는 판정을 내린 당국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노동자 계층의 미혼모 매기. 객관적으로 본다면 도저히 아이를 기를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어머니였다.

모성애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식으로 접근하는 영화들도 있다. <스트립티즈>(Striptease, 96)의 데미 무어는 현모양처가 아니어도 모성애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밖에 오컬트 호러 <블레스 더 차일드>(Bless the Child, 2000)의 킴 베이싱어는 불임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모성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초현실적인 힘을 지닌 조카를 구하기 위해 악마와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친다. <네임리스>(Los Sin Nombre, 99)의 클라우디아도 마찬가지. 5년 전에 실종된 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딸을 찾아 나선 그녀는 잔학한 악의 집단 '네임리스'와 일대 사투를 벌인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물 짜는 모성애 이야기는 <스텔라>(Stella, 90)다. 수없이 리메이크된 '스텔라 이야기' 중 1937년에 만들어진 킹 비더 감독 바바라 스탠윅 주연의 <스텔라 달라스>(Stella Dallas)가 가장 유명하다. 이 영화는 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버리는 엄마의 이야기를 담았다.

90년판 <스텔라>의 엄마 역은 가수로도 유명한 베트 미들러가 맡았다. 술집에서 일하던 그녀는 부유한 의사 스티븐과 관계를 맺고 제니를 낳는다. 남모르는 아픔을 삭이며 딸과 함께 살아가던 스텔라는 딸의 성공을 위해 부유한 아버지에게 그녀를 보내고, 일부러 딸이 귀찮은 것처럼 행동해 정을 떼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오열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미워도 다시 한 번>과 일면 비슷하기도 한 <스텔라>는 모성의 본질과 핵심을 찌른다. 그건 바로 '희생과 헌신'. 믿을 수 없겠지만 당신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의 어머니밖엔 없다.

김형석(영화칼럼리스트)http://www.woody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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