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窓]병적인 거짓말

  • 입력 2003년 6월 1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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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온 나라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노무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땅 의혹을 지켜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생각이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데다 사건이 얼키설키 뒤얽혀 있어 무엇이 진실인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의혹을 해명했지만 아직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 임야 8700평에 대한 예를 보자. 노 대통령은 형 건평씨가 개발정보를 듣고 땅을 샀으며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건평씨는 “그 땅은 백모씨의 땅이며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땅을 판 김모씨는 처음에 노 대통령이 실소유주라고 했다가 백씨에게 판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다. 다만 진실은 하나이며 나머지는 거짓말이란 것은 확실하다.

사실 정치인의 말 바꾸기는 그리 드문 풍경이 아니다. 또한 평범하게 삶을 사는 우리 이웃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거짓말도 심하면 병이 된다.

정신의학에 따르면 병적인 거짓말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위기 상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충동적인 거짓말’이다. 뇌에서 충동을 조절하는 물질인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면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이 새로운 거짓말을 낳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소위 ‘공상허언증’이라고도 부르는 마지막 유형은 스스로 거짓말을 지어내 떠벌리면서 그것을 사실로 믿어버리는 경우다.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로도 잡을 수 없다.

거짓말이 심한 ‘환자’의 뇌를 보면 대체로 언어 구성 능력이 다른 능력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기능은 떨어져 ‘정제되지 않은’ 거짓말이 쏟아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난폭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적으로 거짓말이 자기 보호 본능의 일종이란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얘기다. 내 아이가 거짓말을 할 때 지나치게 혼내지 말고 다독거리는 게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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