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환의 줄기세포이야기]"지방질도 쓸모있네"

  • 입력 2002년 3월 24일 17시 30분


“누가 이 살 좀 가져가는 사람 없을까?”

다이어트 열풍이 한창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빠지지 않는 살(지방질)을 지켜보며 원망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푸념을 그냥 웃어 넘기지 못할 일이 최근 발생했다.

그 원망스러운 지방질 안에 고급 줄기세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마크 헤드릭 교수팀의 보고에 따르면 이 지방의 줄기세포는 골 연골 근육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내용이 발표되자, 배아 줄기세포의 연구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던 독일에서 한 정치가가 나섰다. 자신이 먼저 줄기세포 채취를 위해 지방을 제공하겠다고 자원, 살도 빼고 줄기세포 연구에도 일조하겠다는 정치가다운 재치를 보였다.

문제는 지방세포뿐만이 아니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성체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예가 산후 태반에서 나오는 제대혈이다. 제대혈은 1990년대 이전까지는 병원 적출물로 분류돼 폐기처분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제대혈에서 성인의 골수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조혈모(造血母)세포가, 그것도 골수에 비해 10배 가까운 고단위로 발견됐다.

의학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여태껏 이 귀한 세포를 쓰레기통에 넣어왔단 말인가”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제대혈의 조혈모세포는 곧 골수 대신 환자에게 이식되기 시작해서 1999년 미국과 유럽제대혈연합(유로코드)이 발표한 임상사례만 해도 각각 500건을 넘고 있다. 이제는 골수이식이란 용어 자체가 조혈모 세포 이식이란 용어로 바뀔 지경에 이르렀다.

그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프레더 밀러 박사 팀은 지난해 9월 동물이나 사람의 피부에서도 각종 신경세포나 근육 지방 등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척수손상을 입었을 경우 자신의 남는 피부 몇 조각을 떼어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주입함으로써 면역거부반응이 전혀 없는 자가유래성 이식을 통해 신경 재생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거나 성체 줄기세포는 여러 가지 의학적 윤리적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얻기가 쉽지 않다는 우리의 볼멘소리가 어쩌면 쏙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연구에 따라서는 살도 빼고 줄기세포도 얻는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일환(가톨릭대 의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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