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메디컬&로]치료시기 놓쳐 사망… 의사에 책임

  • 입력 2000년 9월 5일 18시 36분


대학생 강석규씨(24)는 토요일 밤 아랫배가 심하게 아프고 열이나 A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 피검사를 해보니 백혈구가 정상보다 2배나 많이 나왔다. 당직 인턴은 “맹장염일지 모르니 입원하라”고 했다. 진통제를 맞은 강씨는 통증이 가라앉자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점심 무렵 통증이 다시 심해져 종합병원을 찾았더니 인턴은 집에 있는 외과의사와 통화한 뒤 “과장님이 ‘내일 출근해서 수술하자’고 한다”고 전했다. 밤새 환자의 체온이 38도를 오르내렸지만 인턴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월요일 출근한 외과과장이 배를 열어보니 맹장이 터진지 오래돼 뱃속에는 고름과 악취로 범벅이 돼 있었다. 간신히 수술을 마쳤지만 고열 통증 전신부종이 가라앉지 않았다. 수술 뒤 4일경 배에서 검은 분비물이 나오고 호흡곤란을 겪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부검결과 사인은 맹장염 뒤의 ‘범발성 복막염’.

법원은 “강씨가 처음 병원을 찾은 토요일에 맹장염을 의심했다면 곧바로 시험적 개복술을 시행해 복막염으로 진행을 막아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병원측에 1억9천만원의 배상 명령을 내렸다.

의료 처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빨리 진단하고 수술하느냐에 생명이 달려있다.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지 모르는 환자가 집에 가겠다고 해도 아무런 설득없이 각서 한 장 받은 것으론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일요일이라도 응급환자가 내원하면 의사는 쉬던 중이라도 병원에 와서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인턴의 간단한 전화로만 진단한 채 수술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게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료전문변호사)www.med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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