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위성시대]구난위성 「코스파스-살샛」

  • 입력 1997년 12월 13일 08시 15분


지난달 26일 미국 태평양 지역 조난구조본부(RCC)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고깃배 「허 그레이스호」를 몰고 나간 남편을 구조해달라는 부인의 전화였다. 그녀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남편이 휴대전화로 「배의 동력이 모두 끊기고 계기판과 무전기가 고장나 곧 좌초할 위기에 빠졌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문제는 계기판 고장으로 멕시코 엘 페스카데로 해안 근처라는 것만 알 뿐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구조본부에선 『남편에게 배에 설치된 위성용 전파 발신기 스위치를 켜라고 전화로 연락하라』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잠시 후 상황판에 선박의 위치가 표시됐다. 본부측은 즉시 구조선과 헬리콥터를 현장에 출동시켰다. 이후 조난당한 배는 엔진을 수리한 후 무사히 근처 항구로 들어올 수 있었다. 위성을 이용한 조난 구조 활동인 「코스파스 살샛」 프로그램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시스템은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 때 사람과 직접 통화하지 않아도 전파를 보내 저절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구조된 사람은 미국에서만 모두 3백91명. 올해는 벌써 4백60명을 넘어섰다. 세계적으로 보면 지난 1일까지 약 15년간 모두 7천8백37명의 인명이 위성 덕분에 구조됐다. 코스파스 살샛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는 27년전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서 비롯했다. 눈보라가 몹시 몰아치던 70년의 어느 겨울날. 미국 의원 2명을 태우고 알래스카 상공을 날던 경비행기 한 대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현직 의원이 탄 비행기였던 터라 교신이 끊긴 지점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수색작전이 벌어졌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갖가지 추측만 무성할 뿐 지금까지 이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심지어 비행기의 잔해조차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건이 터진 후 미국 의회는 국내에서 제조된 모든 비행기에 긴급 상황이 닥치면 저절로 신호를 보내는 자동발신기를 달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 캐나다 프랑스 등 4개국이 위성 제작과 발사에 참여하며 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코스파스」는 러시아어로, 「살샛」은 영어로 구조위성(Save And Rescue satellite)이라는 의미다. 현재 이 시스템에 기본적으로 쓰이는 위성은 옛 소련과 미국에서 각각 2대 띄워 모두 4개. 여기에 평소에는 작동하지 않는 2개 위성이 예비로 돌고 있다. 주위성이 고장나 제 기능을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캐나다와 프랑스는 각각 위성내 수신장비와 신호처리장치를 제조, 미국쪽에서 발사한 위성에 제공하고 있다. 이들 6개의 위성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궤도로 1백분 정도에 지구 궤도를 한바퀴씩 돈다. 코스파스 살샛 프로그램에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모두 28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중 약 20개국에 모두 28개의 임무조정 센터(MCC)가 설치돼 운영중이다. 위성으로 긴급상황을 알리는 신호를 쏘아보내는 발신기의 종류는 부착되는 대상에 따라 비행기용 선박용 개인용 등 세가지. 이들 발신기는 평소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사고가 발생, 급한 상황에 빠지면 저절로 위치 신호를 보내도록 만들어졌다. 물론 사람이 스위치를 올려 작동시켜도 된다. 비행기용 발신기의 경우 기체가 추락하거나 비상 착륙해 충격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보통 선실 내부에 설치하는 선박용 발신기는 물에 닿으면 저절로 수면위로 떠올라 전파를 쏘아 보내도록 설계됐다. 사람이 휴대하는 개인용 발신기는 주로 극(極)지방이나 고산 지역으로 떠나는 탐험대가 사용한다. 미국의 알래스카나 시베리아 지방에선 주민들이 겨울철에 먼거리 여행을 떠날 때 많이 사용한다. 개별 신호기는 나름의 식별 번호(ID)가 붙어 있는 디지털 방식. 신호를 수신해보면 사고 장소의 위치 정보와 함께 조난당한 대상에 대한 정보가 함께 나온다. 선박이나 비행기의 종류를 알면 어떤 방식으로 구조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들 발신기는 첫 발신 후 약 48시간 동안 계속 신호를 보내도록 만들어졌다. 긴급 신호가 발신돼 구조대가 출동하기까지는 최소 16분에서 최대 2시간이 걸린다. 시간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위성의 공전 주기 때문. 일단 신호가 발신되면 그 지역 상공을 도는 위성에 감지된다. 이 신호는 사고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지상중계국으로 보내져 정확한 위치가 계산된다. 현재 사고 장소에서 반경 2㎞ 정도의 오차 범위로 위치를 계산해낼 수 있는 수준이다. 〈수틀랜드·랜햄(미국)〓홍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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