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06…아메아메 후레후레 (5)

  • 입력 2004년 2월 20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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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는 트럭 옆에 멈춰 서서 짐칸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눈과도 마주치지 않고 지팡이를 들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휘둘렀다.

빨갱이!

사찰계 꺽다리가 바지 지퍼를 올리고 운전석으로 올라타자 트럭은 부릉부릉 불만스럽다는 듯 배기가스를 뿜어내고는 붉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사산 상회…구포 약국…덕천 상점…이우근은 간판의 글자를 읽었다. 금정구 부근인 듯하다. 하지만. 봐. 기억하고. 어떻게 할래. 누구에게 전할래. 우근은 하늘을 우러렀다.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열 마리가량의 솔개가 보인다.

수용돼 있던 창고에서 출발한 것은 밤이었다. 밤에서 아침으로, 아침에서 밤으로, 밤에서 죽음으로…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트럭이 산길로 들어서 멈추면 그곳이 우리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아니, 거기서부터는 걷겠지…누구의 귀에도 총성이 들리지 않는 깊은 산 속으로…그 꺽다리는 덩치만 커다란데 꼬마 쪽은 얼굴에나 몸에나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오게 빈틈이 없다…아마도 태권도를 연마했겠지…다리에 총을 안 맞았으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오른쪽 허벅지는 총에 맞았고, 왼쪽 뒤꿈치는 군홧발에 걷어차여 짓뭉개져 버렸다.

얼굴이 수건으로 덮인 채 물에 처박혀도, 천장에 매달려 있는 채찍으로 얻어맞아도, 묶인 두 다리를 각목으로 비틀어도 동지들의 이름을 뱉지 않았다, 어떤 정보도 흘리지 않았다…그러나 이 목숨을 빼앗기는 것보다, 이 다리가 망가진 것이, 천벌을 받았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하나나 여덟에서 엄지손가락이 잘려 나갈 각오로 철사를 풀고, 리볼버에 장전돼 있는 총알은 여섯 발, 둘이 합하면 열두 발…틀렸어 다 틀렸어…왜 그때 북쪽으로 도망치지 않고 담으로 향했던가…북쪽에 있는 그 많은 민가가 다 우리 편이라 사찰계에 쫓길 때마다 장독대 뒤에, 마루 밑에 숨겨 주었는데…아이고, 그런 생각해 봤자! 토성동 부립병원, 부산 형무소 고문실, 부산항 부두의 곡물 창고, 옮기는 곳마다 몇 백 몇 천 번이나 그런 생각을 하고, 생각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몇 백 몇 천 번이나 고개를 젓지 않았는가…

혀를 깨물어서라도 자살하고 싶다. 우근은 이와 새끼줄 사이로 혀를 내밀어 보려 하였으나 재갈은 혀를 해방시켜 주지 않았다.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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