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98>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6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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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위표는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대한(大漢)의 좌승상 한신이 대군과 함께 여기서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한신이 진두에 서서 위왕 표를 노려보며 꾸짖었다. 전날 크게 혼이 난 위표는 한신의 모습만 보고도 놀랐다. 한번 싸워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왕이 그 모양이니 그 군사들인들 제대로 싸울 리 없었다. 위나라 군사는 장졸이 한 덩어리가 되어 그저 달아나기 바빴다.

군사들을 이끌고 성을 나온 한신은 그런 위나라 군사들을 마음 놓고 뒤쫓으며 죽이고 사로잡았다. 그 바람에 3만을 겨우 채우던 위군은 다시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어찌됐건 평양까지만 가자. 거기만 가면 성벽도 두텁고 우리 군사도 많다. 패왕께서 구원을 오실 때까지 넉넉히 버텨낼 수 있다.”

위표가 낙담한 장졸들을 그렇게 달래고 북돋우며 평양으로 가는 길을 잡았다. 그런데 곡양현(曲陽縣) 경계를 벗어나기도 전에 다시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평양이 이미 조참이 거느린 한군에게 떨어지고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사로잡혀 갔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조참이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을 죄인 싣는 수레에 실어 진두에 세우고 자신을 찾아오는 중이라는 말을 듣자 위표는 눈앞이 아뜩했다. 자신이 다시 패왕에게로 돌아간 것은 천하의 대세가 한왕 유방보다는 패왕 항우 쪽으로 기운다고 헤아려서 한 일이었다. 그것은 자기 일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소중한 부모처자의 안위를 위한 헤아림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적의 손에 사로잡혀가 생사를 기약할 수 없게 되고 말았으니 어찌 기막히지 않겠는가.

그때 그래도 장수라고 백직(柏直)이 넋을 놓고 있는 위표를 깨우쳐 주듯 말했다.

“이대로 가면 평양에서 돌아오는 조참의 군사와 우리를 뒤쫓는 한신의 군사 사이에 끼여 꼼짝 없이 사로잡히고 맙니다. 옆으로 빠져 우선 적의 대군에게 에워싸이는 것부터 피하셔야 합니다.”

“옆으로 빠진다면 어디로 간단 말이오?”

“무원(武垣)으로 가시지요. 그곳 현성(縣城)도 성벽이 높고 든든한 데다 남겨둔 우리 군사가 제법 됩니다. 그 성에 의지해 굳게 버티면서 패왕의 구원을 기다려보시는 게 어떨는지요?”

그때 다시 항타(項타)가 나섰다.

“제게 100여 기(騎)만 딸려주신다면 남으로 달려가 패왕께 구원을 재촉해 보겠습니다. 대량(大梁) 부근에 계신다는 패왕의 군영(軍營)을 찾아 우리 위나라의 위급을 알리면, 패왕께서도 그냥 두고 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초나라의 정병(精兵) 몇 만이면 저따위 한군(漢軍)쯤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쫓아버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위표는 조금 기운을 되찾았다. 패왕이 정병 3만을 질풍같이 몰아와 50만 한군을 질그릇 부수듯 한 팽성 싸움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아 보려 했으나, 조참에게 사로잡혀간 어머니와 처자가 천근의 무게로 가슴을 눌러왔다.

“하지만 적병에게 사로잡혀간 늙으신 어머님은 어쩐단 말이냐?”

속 깊은 한숨과 함께 그렇게 탄식했다. 그때 항타가 깨우쳐주듯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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