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재우고 테레비]‘꽃보다 할배’ 보며 아버지를 알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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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회갑을 맞는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친한 아저씨들과 ‘여행 계모임’을 한다. 모은 돈으로 6개월에 한 번씩 가까운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에 다녀온다. 최근 3∼4년간 비행기를 탄 횟수가 앞선 20년보다 많다. 말로는 “모임의 막내라 잔심부름만 한다”고 투덜거리지만 여행을 위해 짐을 싸는 모습은 꽤 즐거워 보인다.

좀 의아하긴 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빨리빨리 주의자’다. 예컨대 쇼핑을 할 때 호기심 많은 어머니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타입이라면 아버지는 저만치 스무 걸음 앞서 갔다. 아버지는 늘 서둘러 앞장섰고, 나머지 가족은 아버지의 꽁무니를 쫓아갔다.

그런 아버지가 평균 연령 60대 초중반 정도일 모임의 막내로서 형님들과 해외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나로서는 늘 궁금했다. 아버지와 친구분들은 어떤 여행을 할까.

그러다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H4’인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씨를 보면서 그간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H4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 속 ‘F4’에 빗대 할아버지 4명을 가리키는 애칭이다. ‘직진 순재’처럼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던 아버지도 해가 넘어가면 숙소에서 흡족하게 술잔을 기울이겠구나, ‘막둥 일섭’처럼 형님들의 커피 심부름도 하겠구나, 할배들의 여행처럼 아버지의 여행도 나름 낭만이 있겠구나, 뭐 그런 것이랄까.

1950년대생인 아버지와 1930, 40년대생인 ‘할배 스타’들을 동일시하긴 어렵다. 게다가 H4가 누군가. 모든 드라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재벌 회장과 동네 어른 역을 독차지한 이들이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의 미덕은 그런 대스타들의 숨겨진 인간적인 면을 억지 쓰지 않고 끄집어낸다는 데 있다. 길을 몰라 헤매고 모르는 음식을 주문하며 눈치 보는 모습부터 잠자기 전 파자마 차림으로 한 움큼의 약을 챙겨 먹는 모습까지 우리 주변의 아저씨, 할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는 할배들의 모습은 공감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여기에 40대 ‘짐꾼’ 이서진은 자칫하면 단조로웠을 할배들의 조합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할배들은 “여섯 살 차이가 좋다” “남상미가 참하더라”라며 노총각 이서진을 걱정해준다. 이서진 없는 곳에서는 “김정은이랑 사귀었잖아”라고 수군대기도 한다. 어느 예능이 이처럼 과감할 수 있을까.

그 덕분에 ‘꽃보다 할배’는 케이블 채널 프로임에도 5%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할배들은 최근 유럽 여행에 이어 ‘시즌 2’를 위해 대만 여행도 다녀왔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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