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푸치니가 오페라 ‘마리 앙투아네트’ 완성했다면 모차르트가 청혼하는 장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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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쇤브룬 궁전에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여러 황제가 이곳에서 여름을 지냈지만 그중에서도 16명의 자녀를 낳고 제국을 통치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죠. 이곳에서 저는 엉뚱하게도 옆 나라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를 떠올렸습니다.

푸치니는 일생 딱 열 차례만 오페라를 발표했습니다. 대략 4년에 한 번꼴이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오페라 프로덕션의 4분의 1을 점하는 초인기 작곡가로서는 지나칠 정도의 과작(寡作)이죠. 한 곡을 발표한 뒤에는 주로 다음 작품의 소재를 정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의 매니저사인 카사 리코르디조차 골머리를 싸맬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저작권까지 사들여 놓고는 포기한 작품도 여럿이었습니다.

이렇게 포기한 작품 중에 ‘마리 앙투아네트’(사진)가 있었습니다. 대본이 완성되기 전에 포기했으니 전체의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만,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가 자애로운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함께 살다가 프랑스의 루이 16세에게 시집가서 단두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질 예정이었겠죠.

특히 궁금한 점은, 작품이 완성됐다면 푸치니가 ‘모차르트 장면’을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것입니다. 1762년, 여섯 살의 신동 음악가 모차르트는 쇤브룬 궁전에서 어전(御前) 연주회를 갖습니다. 전해지기로는 이 천방지축 꼬마가 궁전에서 넘어지자 그보다 두 달 일찍 태어난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가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 순간 모차르트는 외쳤다고 합니다. “공주님, 나랑 결혼해 주시겠어요?” 푸치니라면 그 장면을 어떻게 그렸을까요. 한 세기 전의 대가 모차르트의 음악 스타일을 인용하지 않았을까요.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들려다 포기한 소재로는 ‘카사노바’ ‘어린이 십자군’,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와일드의 ‘피렌체 비극’, 하웁트만의 ‘한넬레의 승천’도 있습니다. 한넬레의 승천 장면은 푸치니가 완성한 ‘수녀 안젤리카’와 비슷할 것 같고, ‘올리버 트위스트’ 초반부의 떠들썩한 모습은 ‘투란도트’ 1막과 닮지 않았을까 싶네요. 좋아하는 작곡가의 생애를 읽는 것은 이런 상상의 재미도 줍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푸치니#마리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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