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잠 못 이루고’ 마지막 소절 ‘빈체~로’… 청중들 반응 좋아 너나없이 길게 끌어 불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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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

푸치니 ‘잠들지 말라’의 악보 끝 부분. ‘빈체로(Vincero)’ 부분의 음표를 늘이지 않도록 되어 있다.
푸치니 ‘잠들지 말라’의 악보 끝 부분. ‘빈체로(Vincero)’ 부분의 음표를 늘이지 않도록 되어 있다.
김연아가 현역 마지막 무대인 5월 4∼6일 서울 올림픽공원 특설링크 갈라쇼에서 사용할 음악을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잠들지 말라’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김연아 자신이 항상 연기하고 싶었던 음악이라고 소속사는 설명했습니다.

‘투란도트’의 남자 주인공 칼라프 왕자가 부르는 이 아리아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본래 제목은 ‘잠들지 말라(Nessun Dorma)’입니다. 비밀 맞히기 대결에서 이겨야만 목숨을 지키고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칼라프 왕자가, ‘새벽이 밝아오면 내가 승리할 것’이라며 자신에 차서 ‘이기리라(Vincero)’라고 노래하죠. 이 부분의 높은 B(시)음이 전곡의 절정을 이룹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는 금메달리스트였던 일본의 아라카와 시즈카가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이 음악을 사용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곡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마지막 ‘빈체로’의 ‘체∼’를 테너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길게 끌기 마련입니다. 길게 연주하라는 ‘페르마타’ 표시가 악보에 있기라도 한 듯이. 그렇지만 악보에 페르마타 표시는 없습니다. 실제 이 부분은 짧은 16분 음표로 노래하도록 되어 있지만 오늘날 이 악보대로 노래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합니다. 오페라 무대는 물론 콩쿠르에서조차 길게 노래하는 것이 용인됩니다. 노래 없이 관현악만으로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노래뿐이 아닙니다. 푸치니의 테너 아리아 중 ‘라보엠’의 ‘그대의 찬 손’,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도 절정의 순간에 음표를 길게 끄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대…’에서는 ‘희망(Speranza)’, ‘별은…’에서는 ‘키스(Baci)’라는 가사 부분이죠. 이 노래들에도 길게 끌라는 표시는 없습니다.

이 노래들 모두 처음에는 푸치니가 쓴 악보대로 노래했다고 합니다. 몇몇 가수들이 길게 음표를 끌어 좋은 반응이 나오자 너나없이 길게 늘여 노래하게 된 거죠. 변칙이 ‘스타일의 변화’로서 용인되게 된 사례라고 할까요.

이런 걸 보면 ‘클래식은 악보를 바꾸지 않고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인식도 바꾸어야 할 듯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투란도트#잠들지 말라#빈체로#푸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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