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시련의 한국경제… 그래도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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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자기 인생을 이따금씩 저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또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를 바다에 거꾸로 처넣으세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볼테르·열린책들·2009년) 》

최근 힘들었던 날, 어떤 이가 나를 위로했다.

“어차피 다들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거야. 서서 가기도 하고 가끔은 자리가 나서 앉기도 하고. 그러다 언젠가는 모두 어디에 도착하겠지.”

그는 제주도에서 한 가정의 집사(執事) 일을 하고, 서울에서 나이트클럽 입구를 지키다 룸살롱 영업 상무를 한 사람이다. 지금은 식음료 대기업의 청량음료 유통 일을 하고 있다. 몸으로 부닥치는 일을 해왔지만, 종이 위에서도 헤매는 나보다 세상 보는 눈이 깊었다.

누구에게나 비극의 페이지가 있다. 삶의 모든 장이 오색찬란한 동화일 순 없다. 프랑스의 역사가, 문학가이자 철학자였던 볼테르(본명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1694∼1778)는 1759년에 이에 관한 ‘희극적 비극’을 썼다.

주인공 캉디드는 남작의 자식들과 함께 가정교사 팡글로스의 가르침을 받는다. 그 시대 최고의 철학자인 팡글로스는 “지금 이 성이 현존하는 최고의 성이며 우리의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 최고의 세계”라는 낙관론을 증명하는 데 인생을 바쳤다.

캉디드는 이 낙관론을 무조건적으로 믿었다. 캉디드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쟁과 대지진, 노예 제도, 종교 재판 등 모든 절망적 인간 생을 경험한다. 캉디드의 마지막 말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였다. 볼테르가 목도한 18세기의 비극은 당대의 낙관론을 우스개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볼테르는 결국 절망 밑바닥까지 처박힌 삶을 ‘우리의 밭’으로 길어 올린다.

그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낙관론을 잃어가는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어릴 적의 따뜻한 노란 빛깔의 삶이 아닐지라도, 인생의 페이지가 때론 까맣게 타들어 가더라도, 아직 갈아야 할 밭이 남아있다면 삶은 지속된다고 말하고 싶었을 거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한국경제#우리의 밭#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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