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147>녹엽성음(綠葉成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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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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綠: 푸를 록 葉: 잎 엽 成: 이룰 성 陰: 그늘 음

여자가 결혼해 자녀가 많은 것을 비유하며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에서 나온 말이다. 명문귀족 출신답게 26세에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한동안 막부(幕府)의 각료나 지방관을 지내는 등 벼슬길이 순조롭지 않았다. 높은 벼슬을 하면서도 만족하지 않았고 양주(陽州) 진주(秦州)의 환락가를 두루 돌아다니기도 했던 기인이었다. 서정적인 시를 잘 지어 대두(大杜) 두보와 견주어 소두(小杜)라고 일컬어졌다. 송(宋)나라 계유공(計有功)의 당시기사(唐詩紀事) ‘두목(杜牧)’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두목이 호주(湖州)를 유람하던 때의 일이다. 어떤 여인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당시 열 살 남짓한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가고 있었다. 그 딸은 두목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빼어난 얼굴이었다. 호탕한 성격의 두목은 자신도 모르게 그 딸에게 마음이 끌려 여인에게 말했다.

“십 년 뒤 이 아이를 제 아내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만일 십 년이 지나도 제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십시오.”

그 여인도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두목이 호주를 다시 찾은 것은 약속한 십 년보다 4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니 이미 3년 전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 자식들을 두고 있었다. 두목은 실망했고 안타까운 마음에 시 한 수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나타냈다.

“그로부터 봄을 찾았으나 좀 늦게 갔기에/꽃다운 날 원망하여 슬퍼할 수도 없구나/거센 바람이 진홍색 꽃을 다 떨어뜨리고/푸른 잎이 그늘을 만들어 열매만 가득하네(自是尋春去較遲, 不須추창怨芳時, 狂風落盡深紅色, 綠葉成陰子滿枝.)”

이 칠언절구는 제목이 없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창시(愴詩)’, 즉 슬픈 시라는 이름으로 제목을 달았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그 아리따운 여인은 이미 없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훗날 이 시는 제목이 ‘탄화(嘆花)’로 바뀌었다고도 전해온다. 바뀌지 않은 것은 그녀를 향한 두목의 순수한 마음뿐이었을까.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한자#고전#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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