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131>학명구고 성문우천(鶴鳴九皐聲聞于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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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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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 학 학 鳴: 울 명 九: 아홉 구 皐: 물가 고
聲: 소리 성 聞: 들을 문 于: 어조사 우 天: 하늘 천

현명한 사람은 반드시 세상에 드러난다는 의미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학명(鶴鳴) 편에 나온다.

“학이 깊숙한 물가에서 울면 소리가 하늘까지 들린다. 물고기는 연못에 숨어 있으나 간혹 못가에도 있다(鶴鳴於九(고,호) 聲聞于天 魚潛在淵 或在于渚).”

학명구고란 말은 시공간을 건너뛰어 사마천의 사기 ‘골계열전’에 다시 등장한다. 제왕의 시대요, 유가적 치세와 엄격한 법치의 한 문제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도 자유로운 지성의 활동은 여전했으니, 학궁(學宮)에 모인 박사들과 골계가(滑稽家)들이 그들이었다.

특히 동방삭(東方朔)은 언제든 궁중에서 황제를 모실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현실 감각으로 황제들의 언행을 거론하며 비판과 조언을 병행했다. 내용은 때로 무거웠지만 형식은 가볍고 날렵하여 동방삭은 골계가로 불렸다.

그러나 학궁의 박사들은 모두들 동방삭을 비난했다. 황제를 섬긴 지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건만, 벼슬도 겨우 시랑(侍郞)이고 직위는 집극(執戟)에 지나지 않으며, 황제를 위해 제대로 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동방삭의 일격은 바로 시경의 구절을 인용한 이 말이었다.

“궁궐에서 종을 치면, 소리는 밖까지 들린다. 학이 깊은 물가에서 울면, 소리가 하늘까지 들린다(鼓鍾于宮 聲聞于外 鶴鳴九皐 聲聞于天).” 풍자시처럼 들리는 이 말은 ‘당신들보다 내가 훨씬 멀리 보고 사물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다.

그는 예를 하나 들었다.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몸소 인의를 실천하다가 72세가 돼서야 주나라 문왕을 만나 자신의 포부를 실행할 수 있게 됐으며, 제나라에 분봉(分封)돼 자손들에게 이르기까지 700년 동안 제사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일화다. 결국 동방삭은 그 힘의 원천이 묵묵히 시세를 관망하며 때를 기다린 여상의 묵직한 선비정신에 있다고 봤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한자#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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