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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만나는 詩]뜯기거나 얼려지거나 내팽개쳐지는… 그의 진짜 이름은 명태!

입력 2014-04-03 03:00업데이트 2014-04-0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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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뱃사람들이 ‘먹태’라고 부르는 바닷고기가 있다. 다른 물고기들이 피해가는 빠른 물살 속에서 살다 보니 지느러미를 한시도 놀릴 틈이 없다. 먹태는 그가 사는 곳이 규정해준 이름일 뿐. 평생 거센 물결과 싸우느라 그 자신도 잊어버린 진짜 이름은 ‘명태’다.

이달에 만나는 시 4월의 추천작은 성윤석 시인(48·사진)의 ‘명태’다. 1990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시인이 2007년 ‘공중 묘지’ 이후 7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멍게’(문학과지성사)에 실렸다. 추천에는 손택수 이원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시인이 참여했다.

어시장으로 향하는 오토바이에서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는 시인은 이 시가 ‘초심(初心)’에 관한 시라고 했다. 어떤 삶의 경로를 거치느냐에 따라 노가리나 코다리로, 동태나 황태, 북어로도 불리게 되는 명태의 삶이, 한때 벤처기업 사장이었다가 신문기자와 공무원, 묘지기를 거쳐 1년여 전부터 경남 창원의 어시장에서 잡부로 일한다는 시인의 모습과 퍽이나 닮았다는 생각을 했단다.

“냉동 창고에서 꽝꽝 얼린 명태를 꺼내는 것 같은 육체노동을 제가 언제 또 해봤겠어요. 처음에는 들지도 못했죠. 그런데 몸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자의적인 직함이나 이름이 없는 어떤 상태에서 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게는 그 무엇으로 불리기 전의 명태가 그런 모습이었죠.”

‘뜯기거나, 얼리거나, 바람에 실리거나,/얼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일이거나’ 같은 명태의 이름을 결정하는 과정들을 나열한 시어에 대해서는 “우리네 인생을 보여주는 비유인 동시에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 온 내 지난 삶을 압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천위원 손택수 시인은 “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물방울이 시집 밖으로 튀어오를 듯 실감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일에 멍들 대로 멍든 자들, 이 시집을 안주 삼아 소주라도 한잔 들어볼 일이다”고 했다. 이원 시인은 “어보(魚譜)이면서 동시에 뜨겁고 고요한 자화상이다. 비린내와 눈물이 서로를 알아보는, 그러나 침투하지는 못하는 자리에서 성윤석 특유의 ‘어보 자화상’이 탄생한다”고 추천의 이유를 밝혔다.





이건청 시인의 선택은 제주를 무대로 활동해 온 나기철 시인의 시집 ‘젤라의 꽃’(서정시학)이었다. “절제의 미를 보여주는 단형의 시편들을 싣고 있다. 길이가 길고 수사가 장황한 시편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시에서 정제되고 절제된 시는 반갑게 읽힌다. 정제와 절제의 시는 강한 정신의 소산이다.”

장석주 시인은 김경주 시집 ‘고래와 수증기’(문학과지성사)를 추천했다. 장 시인은 “김경주의 시들은 질량이 거의 없는 유동성과 가변성의 물질을 타고 나간다. 이토록 가볍고 쉽게 사라지는 것들은 견고한 것, 오래 남는 것, 이를테면 세계와 질서의 확실성과 부동성을 부끄럽게 만든다”고 했다.

김요일 시인은 최근 시집 ‘반복’(문학동네)과 ‘네모’(문학과지성사)를 동시에 펴낸 이준규 시인을 주목했다. 시인은 “끊길 듯 말 듯 반복되는 시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봄꽃 그늘 아래에서 마시는 낮술 같은 투명한 슬픔과 맞닥뜨리게 된다. 댕그라니 놓인 삶 앞에서 변주되어 꽃잎처럼 흩날리는 시어들….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괜찮을 이 승묘한 시편들이 시인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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