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독타, 당신의 타디스와 함께 모험을 찾아 떠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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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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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닥터’라니까.”(I’m THE Doctor.)

-‘닥터 후’ 시즌 4 (영국 BBC)
안녕, 닥터. 이렇게 부르면 못 알아들을지도 모르겠군요. 영국식 발음으로 ‘독타’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방송됐으며, 가장 인기 있는 공상과학(SF) 드라마의 주인공. 오늘 이 지면을 빌려 당신에게 소원을 빌어 봅니다. 산타 따윈 없다는 건 옛날 옛적 이미 깨달았으니 제가 알고 있는 히어로 중 가장 매력적이고 섹시하며 와일드하고 제 취향이신 당신에게 크리스마스 소원을 비는 거예요.

외계인이지만 외모 성격 모두 웬만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닥터께선 전 우주에 유일하게 남은 타임로드 종족이라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여행하며 인간 존재를 굽어보시니 제 소원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당신의 드라마 시리즈 ‘닥터 후’를 정말 좋아합니다. 대부분의 정규 시리즈와 스핀오프 시리즈, 철마다 나오는 스페셜 에피소드까지 다 섭렵했죠. 닥터의 화려한 모험을 그리기에 딱인 다소 유치하고도 키치적인 특수효과, 듣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주제음악, 셰익스피어와 애거사 크리스티, 윈스턴 처칠과 친구 먹으면서 역사를 요리조리 뒤집고 헤집는 그 화려한 문화·역사적 레퍼런스, 웃기지만 무섭기도 한 당신의 적 달렉과 사이버맨까지. 1963년 처음 방영된 뒤 시즌에 시즌을 거듭해 이젠 11대 닥터까지 배출해낸 이유를 충분히 알겠더군요.(닥터를 모르는 지구인들을 위해 설명: 닥터는 목숨이 위험할 때 새로운 몸과 인격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재생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즌에 따라 배우가 달라질 수 있음.)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건 시간과 공간을 여행할 수 있는 당신의 우주선 타디스였습니다. 파란색 경찰용 공중전화박스. 흔한 모양이면서도 설레도록 빈티지하고, 밖에서 본 크기는 딱 전화박스 크기인데 안은 무한으로 넓어 효율성도 좋죠. 그렇지만 운항할 때는 여지없이 연기를 내뿜고 바닥에 나뒹굴 정도로 흔들려, 시청자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터 모래 위에 뒹구는 듯한 쾌감을 선사하는 센스까지 갖췄어요. 얼마나 훌륭하면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국민여동생’ 아이유의 신곡 뮤직비디오에 타디스의 오마주인 듯한 공중전화박스 타임머신이 등장했겠어요.

타디스는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를 한 몸에 담고 있습니다. 뒷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모험을 찾아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죠. 게다가 당신은 어디서 무슨 문제가 생기든 해결해내는 바로 ‘그 닥터’! 아무리 많이 즐긴 후라도 모험을 떠난 바로 그 순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현대 직장인의 꿈, ‘이거저거 다 필요 없고 그냥 현실 탈출’의 완결판 아닌가요?

닥터, 그러니 두 손 모아 빕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제발 제 앞에 좀 나타나 주세요. 고달픈 삶 샤방샤방 치장해줄 남자친구도 없고, 제 옆에는 집에 일찍 안 들어온다고 구박이나 하는 고양이 두 마리뿐이네요. 부디 저희 아파트 앞마당에 타디스를 주차시켜 주세요. 기왕이면 크리스마스이브가 오기 전에. 저는 당신이랑 같이 여행 다니던 그 여자들보다 훨씬 낫다니까요. ‘함께 가자(come with me)’는 한마디면 전 언제든 달릴 준비가 돼 있답니다. 독타, 플리즈!!!!

수세미 기자 s9689478585@gmail.com  
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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