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교래 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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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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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내뿜는 ‘제주의 허파’… 그 오솔길 고요에 빠지다

나는 걸으면서 가장 풍요로운 생각을 얻게 되었다.

- 키르케고르(덴마크의 철학자) 》
아침 안개가 낮게 깔린 조용한 숲을 걷는다. 원시림의 모습을 담고 있는 제주 중산간 숲 속. 숲을 걸으면 항상 따르는 그 고요가 나는 좋다. 녀석은 내 옆에서 나란히 걷는다. 무수한 상념들은 이내 안갯속으로 흩어진다.

늘 그런 식이다. 걷기가 즐거워질수록 머릿속은 공허해지게 마련이다. 그나저나 어디를 스케치북에 담아 볼까. 간간이 탐방로를 벗어난 곳에 있는 야외교실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돌로 쌓아 만든 단이 있다. 사방에 널린 게 돌이니 만들기가 어렵진 않았을 듯싶다.

한쪽에 걸터앉아 스케치북을 펼친다.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선뜻 첫 선이 그려지질 않는다. 고요가 가만히 다가와 속삭인다. “굳이 뭔가를 하려 애쓸 필요는 없어. 그냥 가만히 시간을 느껴보라니까.” 고개를 들어 나무 사이로 천천히 흐르는 안개의 움직임을 본다.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녹음 사이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나는 교래자연휴양림(교래곶자왈)에 와 있다.

○ 돌과 나무, 그리고 숲

곶자왈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용암 지형, 즉 용암이 굳어가면서 쩍쩍 갈라져 생긴 돌무더기 땅 위에 생긴 숲이다. ‘곶’은 숲을, ‘자왈’은 돌과 가시나무 들판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교래자연휴양림은 곶자왈에 최초로 들어선 휴양림이다. 숲길을 걸어보면 주위가 모두 검은 현무암이다. 흙의 양이 빈약할 수밖에 없고, 나무들은 뿌리를 깊이 뻗지 못해 성장 속도가 느리다. 수형이 삐뚤거나 굴곡이 심한 나무가 많다. 바위에 올려진 분재 같은 모습의 나무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암석 사이로 빠르게 스며드는 물은 풍부한 지하수층을 형성해 준다. 이 물이 바로 ‘삼다수’로 팔리는 제주의 지하수다. 흥미로운 것은 제주에서 물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이 생수업체가 아니라 골프장이란 사실이다. 의외다. 예전에 곶자왈은 버려진 땅으로 여겨졌다. 많은 골프장이 곶자왈 자리에 들어섰다. 그런 골프장의 잔디를 위해 제주 지하수가 가장 많이 쓰인다고 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곶자왈은 ‘제주의 허파’로도 불린다. 무성한 숲이 산소를 만들어내고, 수많은 돌 틈으로 인해 마치 땅이 숨을 쉬는 것 같다고 해서다.

특히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장소이기도 하다. 곶자왈의 독특한 환경은 한반도의 다른 자연림과 구분되는, 덩굴 식물과 양치식물의 공존환경을 만들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곶자왈 오솔길에 놓인 그 고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곶자왈의 원시림은 땔감과 목재를 얻기 위한 벌목으로 크게 훼손됐다. 아직도 그때 사용했던 숯가마들이 남아 있다. 이후 숲은 복원과정을 거쳐 2차림(훼손 후 다시 조성된 숲)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곶자왈은 최근 관심이 높아지는 생태관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년 9월 ‘환경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동북아시아 최초로 제주에서 열린다. 물론 곶자왈도 WCC 참석자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게 될 탐방 코스 중 하나다. 세계의 많은 관계자들이 지구라는 공동체 속에서 자연이 왜 소중한지를 직접 느낄 좋은 기회가 되리라.

결국 그림을 다 끝내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숲 속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은 저마다 다양한 사색의 방법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조용한 방에 앉아서, 또 누군가는 카페에서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그리고 누군가는 걸으면서 생각을 한다.

내 안에 무거운 생각이 가득해지거나 문득 떠오르는 뭔가의 추억을 더듬고 싶어진다면, 나는 곶자왈의 오솔길에 놓인 그 고요를 떠올리며 내 마음을 기댈 것이다. 앞으로도 생활의 여기저기에서 문득문득, 한없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그 숲속 산책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것만 같다. (도움말=제주생태관광 고제량 대표)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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