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일하지 않는 개미에도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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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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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개미는 ‘생존 상비군’
인간사회도 ‘노는 개미’ 필요

‘80 대 20 법칙’이라는 게 있다.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을 실증적으로 검증한 용어다. ‘파레토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일하지 않는 개미에도 의의가 있다’(미디어팩토리)의 저자 하세가와 에이스케(長谷川英祐) 홋카이도대 교수는 인간 사회에 적용되는 이 법칙이 개미와 꿀벌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사회성 곤충의 세계에서도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일개미의 70%는 평상시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대며, 10%는 평생 일하지 않는다. 개미 세계의 80%는 나머지 개미들이 물어 온 먹이에 무임승차하는 셈이다. ‘게으른 베짱이’와 ‘부지런한 개미’에 익숙한 일반인들로서는 놀라운 발견이다.

상식을 뒤엎는 게으른 개미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20%만 일하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어떻게 조직이 유지될 수 있을까.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반응역치(反應m値)’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반응역치란 어떤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의 크기. 일종의 문턱 값이다. 일정 값 안쪽의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다가 그 값을 넘어선 자극에는 비로소 행동이나 반응으로 이어지는 경계치다. 3명이 한 방에서 같이 생활할 때 가장 먼저 청소 빗자루를 드는 사람이 지저분함을 가장 참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개미의 세계에서도 먹이를 찾거나 유충을 보호하는 일의 필요성을 감각적으로 먼저 느낀 개미부터 행동한다.

가설대로라면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민감한 개미만 죽도록 일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반응역치가 낮은 개미들만 일을 한다. 그러나 피곤함이 누적돼 더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개미집의 생태계에 이상이 감지되고 지금까지 놀고 있던 개미들이 비로소 일을 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인공수정을 통해 반응역치가 비슷한 개미만으로 개미집을 구성한 실험 결과. 다양성이 떨어지는 개미집일수록 모든 구성원이 한 가지 목표에만 동원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직피로를 느끼기 쉽고 결국 그 개미집은 빨리 붕괴된다는 것이다. 획일화되고 단일화된 사회가 단기적 효율성은 높아도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결론이다.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것은 개미 세계에 들이댄 돋보기를 인간 사회에 적용한 점이다. “현대 사회의 기업은 능력이 월등한 인재를 원하고 효율성만을 추구한다. 글로벌리즘은 이 같은 경향에 박차를 가해 개인으로 하여금 조직을 위해 최대한의 능력을 쥐어짜내게 한다. 여력 없는 사회가 어떤 결말에 이를지는 자명하다.”

저자는 실용적인 연구만을 추구하고 강요하는 현재의 대학이 여력을 탕진한 대표적인 집단이라고 했다. 본래 대학에 맡겨진 사회적 역할은 기초연구를 통해 응용 가능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것임에도 돈 되는 연구만 강제한다는 것.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한가한 연구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인류의 위협에 대비한 위기분산이라는 것이다. 미천한 생물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자가 인간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개미’일지 몰라도 존재 의미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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