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뚱뚱한 게 죄인가요?… 비만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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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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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돈 쿨릭, 앤 메넬리 엮음·김명희 옮김/376쪽·1만7000원·소동

유숙열 문화미래 이프 공동대표(오른쪽)
유숙열 문화미래 이프 공동대표(오른쪽)
비만의 문제는 이제 전염병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과체중 성인 인구는 10억 명에 달하고, 그중 300만 명은 비만이다. 너도나도 다이어트 열풍에 시달린다. 하지만 비만은 단순한 다이어트 이슈가 아니다. 또 어디에서나 비난받고 저주받는 것도 아니다. ‘지방공포증’에 걸린 것 같은 서구 사회의 규범과 달리, 세계 어떤 곳에서는 지방이 아름다움 또는 건강과 번영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이 책은 ‘팻(Fat)’을 ‘살’이나 ‘지방’으로 한정하지 않고 음식 언어 미학 심지어 관능의 모체로 접근한다. 인류학자들이 비만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 스웨덴 이탈리아 같은 이른바 서구권 선진국 국민은 물론이고 아랍권 중남미권 아프리카권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원주민 등을 대상으로 현지조사를 해 그 결과를 엮었다.

13명의 인류학자는 전 세계에 걸친 지방의 다양한 의미와 의도를 읽기 쉽게 풀어놓았다. 니제르 아랍인들에게 뚱뚱한 여성은 아름다움의 최고봉이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장 풍만한 여성을 뽑는 미인대회가 열렸다. 나이지리아는 수년간 미스월드대회의 성적이 저조하자 2001년에 키가 크고 날씬한 여성을 내보냈고, 이 여성이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자국에서는 미인으로 환대받지 못했다.

반면 세계 최고의 여성권익국가인 스웨덴의 10대 여학생들은 의회나 노동력에서 여성의 비율, 보육시설이나 출산휴가에 반영된 여성주의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관심 있는 건 ‘살’에 관한 얘기다.

아름다운 몸에 대한 숭배가 브라질만큼 발달된 곳은 지구상에 없다. 브라질은 1인당 성형외과 의사 수가 세계 어느 곳보다 많다. 2001년엔 무려 35만 건의 성형수술이 행해졌다. 2001년 미스유니버스대회에 브라질 대표로 참가한 줄리아나 보르헤스는 유방 확대, 광대뼈 세우기, 턱 실리콘 삽입, 브이라인 성형, 귀 성형, 허리와 등에 지방흡입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브라질 중산층 여성은 월급보다 많은 돈을 들여 지방흡입 약을 구입한다. 그들에게 지방은 빈곤과 유색 인종의 상징이며, 지방을 뺀다는 것은 백인 상류층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방의 문화가 몸에 관한 것에만 한정된 건 아니다. 스팸과 올리브 오일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스팸 제조사에 따르면 미국 최고의 스팸 소비지는 하와이다. 미국의 스팸은 군인과 노동자에게 미국 세력의 세계 팽창을 용이하게 해줬던 ‘산업식품’이었다. 미국 본토의 식민주의자가 들여온 스팸은 하와이 대농장에서 일하던 원주민 노동자들의 빈 배도 채워줬고 이는 오늘날 하와이인들의 식습관도 지배하고 있다.

중세 프랑스 소설가 라블레의 책 속 삽화. 주요 인물인 뚱보 가르강튀아는 대식을 즐겼다. 소동 제공
중세 프랑스 소설가 라블레의 책 속 삽화. 주요 인물인 뚱보 가르강튀아는 대식을 즐겼다. 소동 제공
지방은 ‘제2의 담배’라 불리며 심혈관계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올리브 오일은 심장에 좋은 지중해식 식단의 핵심 재료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유명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의 산지인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는 이 오일이 든 병이 깨지면 성직자를 불러 집에서 악령을 쫓아내야 한다고 믿는다. ‘처녀’인 올리브유가 병에서 나와 가서는 안 될 곳까지 퍼졌기 때문에 ‘순결’을 회복하기 위해 강력한 종교적 의례가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뚱보 포르노에 관한 내용도 관심을 끈다. 특히 뚱뚱한 포르노 여배우가 성행위를 하지 않고 핥고, 후루룩 마시고, 오도독 씹으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인상 깊다. 여자가 남근 없이도 마음껏 먹고 즐기며 쾌락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포르노는 그 존재만으로도 뚱뚱한 여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싶다.

엮은이들이 서문에서 밝히듯, 이 책은 지방에 대해 잘못됐다고 손가락질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라고 설교하지도 않는다. 인류학자의 연구방식이 그러하듯, 지방에 대한 세계 여러 곳의 현상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인류학자가 아닌 비만인권운동가 앨리슨 미첼이 쓴 마지막 장이다. 키 160cm에 몸무게가 75kg에서 100kg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그는 비만인권운동단체 ‘PPPO(매우 뚱뚱하고 짜증나는·Pretty Porky and Pissed Off)’를 설립하고 1996년 첫 시위를 함으로써 뚱보 해방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바른 신체상과 섭식장애를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부터 건강과 미의 기준을 재교육하는 것까지 아우른다. 또 신체를 이유로 차별하는 법과 정책을 바꾸기 위한 각종 정치 및 교섭 활동도 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의 문제의식은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의 몸을 돌아보라는 데 있다. 다이어트 문화를 무작정 따라가지 말고 지방에 관해 지성적으로 사고하고, 지방에 깃든 우리 문화의 차별 등을 제대로 인식하라는 것이다.

유숙열 문화미래 이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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