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광복 후의 한일 관계]⑩ 한일 양국인의 이중적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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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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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올해 4월 일본 나고야(名古屋) 시 오우카(櫻華)회관에서 열릴 계획이던 일본군 위안부였던 한국인 할머니의 역사 강연회가 강연 사흘을 앞두고 갑자기 취소됐다. 일본 시민단체인 ‘신일본부인회 아이치(愛知) 현 본부’가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과거사를 배우자는 의도에서 올해 2월 회관을 예약하며 마련한 자리였다. 강연이 열리기 일주일 전쯤 보수단체 회원이라고 밝힌 10여 명의 남성이 회관으로 몰려와 위협하는 바람에 충돌을 우려한 주최 측은 대관 예약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사례 2. 올해 6월 30일 주한 파라과이대사관 웹사이트에 갑자기 한국인 방문객이 늘었다. 일본이 파라과이에 패해 월드컵 8강 진출이 좌절된 직후였다. 게시판에는 ‘파라과이는 우리 형제 나라입니다’와 같이 일본의 8강 좌절을 통쾌해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파라과이가 일본의 8강 진출을 막은 데 감사를 표하는 글이었다. 여기에 일본 인터넷 사용자가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노예들은 원숭이들이다’라는 영문 글까지 올라오면서 파라과이대사관 게시판은 한일 양국인의 싸움터가 돼버렸다.》
한일 모두 우월-열등감 혼재… 韓流가 독도 거치면 寒流로

한일 수교 이후 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린우호(善隣友好)를 주창해왔지만 두 나라의 심리적 거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여러 차례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했지만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한국은 미래 동반자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일본의 성공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의 근저에는 서로에 대한 이중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 2005년은 기회였다. 을사늑약 체결 100년이자 광복 60주년, 한일 수교 40년의 역사적인 해였다. 마침 일본에서는 한류(韓流) 붐이 일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해 2월 주한일본대사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했고, 3월 일본 시마네 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선언하는 등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류도 독도를 거치면 한류(寒流)가 됐다.

일본 측 망언의 배경에는 피해자인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이 있다. 1953년 10월 3차 한일회담에서 구보타 간이치로 일본 수석대표가 ‘일본은 식민지 시대를 통해 한국에 철도나 항만을 건설하고 농지도 조성했다’며 한국에 혜택을 줬다는 취지의 첫 망언을 하자 당시 대부분의 일본 언론은 ‘발언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날 일본 국민에게도 이런 저류는 그대로 흐르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앞둔 지난해 말, 군국주의가 발아한 메이지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을 방영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인의 인식에는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과 멸시감이 남아 있다. 재일동포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과 한국인의 대일 인식은 어떨까. 우리 정부는 1998년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문호를 열었지만 일본 드라마는 아직도 지상파 방송을 거의 탈 수 없다. 한일 공동제작물만 방영할 수 있다는 정책 때문이다. 반면 케이블방송과 인터넷을 통해서는 원하는 일본 드라마를 사실상 제한 없이 볼 수 있다. 실효성이 적은 일본 드라마의 지상파 방송 제한 정책이 유지되는 현실에서 ‘문은 열지만 완전한 개방은 꺼림칙한’ 우리 사회의 복잡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서울대에 일본어학과가 설립되지 않았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일본어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프랑스어나 독일어에 앞서는데도 한국의 대표적인 국립대에 일본어학과만은 둘 수 없다는 ‘사회적 상징’이 반영된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일본이 역사적 가해자로 증오의 대상이지만 경제대국으로서 여전히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나라라는 인식이 공존한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싫어해도 일본 기저귀와 분유, 자동차에는 열광한다.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居酒屋)에서 사케(酒)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웹사이트에 일본을 증오하는 글을 쏟아낸다.

한영혜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사회학)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발감과 함께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로부터 문화를 전수받던 나라’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양국인의 이중적 인식의 원인에 대해 하우봉 전북대 교수(사학)는 “기본적으로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가 반영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상대방의 중심성과 우위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우월감 속의 열등, 열등감 속의 우월이라는 ‘분열적 복합적인 심리’가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먼저 열등감을 가진 쪽은 일본이었다. 선사시대부터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문명을 전수받아 한국에 대한 문화적 동경심이 있었다. 그러나 근대문명이 일본의 동쪽으로부터 전해지면서 이 관계는 뒤바뀌었다.

하 교수는 “분열적 복합심리는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감정적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선린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독선과 배타성을 지닌 자민족중심주의 의식을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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