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15>아버지의 이름으로…‘트레이스’ 고영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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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5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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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웹툰 ‘트레이스’의 고영훈 작가
인기 웹툰 ‘트레이스’의 고영훈 작가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영화화가 결정된 웹툰 '트레이스'의 고영훈 작가(28)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정의했다.

'트레이스'는 돌연변이 초능력자 트레이스가 다른 세계에서 온 괴물 트러블을 물리치는 과정을 그린 SF 액션 만화다. 트레이스는 트러블을 물리칠 수 있는 전투력을 겸비했지만, 각국 정부의 관리대상에 오르는 등 문제아 취급도 받는다. 일부 트레이스는 정부 조직에 흡수되거나 반대로 범죄 집단으로 변하기도 한다.

얼핏 보면 '엑스 맨' 류의 히어로 물이 연상되지만, 그 안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우리네 아버지들의 고군분투가 담겨 있다.

딸과 아내를 데려간 배후를 쫓다가 범죄자로 내몰린 트레이스 김윤성, 가족의 안위를 위해 정부에 협조하며 윤성을 쫓는 전태수, 트레이스 고교생 사강권을 사랑으로 키운 양 아버지 한 씨 등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다.

내 만화에 어머니가 나오지 않는 까닭은…

그래서일까. 그는 '한국형' 히어로물의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

"제 만화에는 좋은 아버지와 나쁜 아버지가 반드시 나옵니다. 김윤성은 좋은 아버지고, 가족을 트레이스 연구의 실험체로 이용하는 정희섭의 아버지는 나쁜 아버지죠. 제 아버지는 3년 전 어머니와 이혼했습니다. 그 분의 입장이야 있었겠지만, 가족들이 많이 상처를 받았어요. 헤어진 지금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더 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한 뒤, 작가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누나 둘은 따로 나가 살고 고 작가와 어머니가 함께 산다. 헤어진 뒤 처음 2년간 아버지가 연락을 해왔지만, 고 작가는 응하지 않았다. 1년 전부터는 아버지 쪽에서도 연락을 끊었다.

"단행본이 나오고 영화 계약할 때 가족들이 모여 축하하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어요. 안타깝죠. 제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 나쁜 아버지가 나오는 제 만화를 꼭 보았으면 합니다. 관심이 없어 아들이 그림을 그리는 줄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제 그림을 보지 않을까요?"

반면 그의 작품에선 이상하리만치 어머니가 부재한다. 일찍 죽거나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이에 대해 "어머니의 빈자리를 확실히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어머니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역설적으로 그 같은 극단적인 방식을 채택했다는 얘기다.

그는 어머니를, 또 가족을 힘들게 한 아버지에 대해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화해하고 싶은 어린 아들의 모습이 잠시 보인 것도 같았다.

젝스키스, 태사자의 백 댄서 하다 만화가 된 사연

고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가수들의 백업 댄서로 활동했다. 고교 2학년이던 1999년 시스템이라는 댄스 팀에 들어가 그룹 코요테, 젝스키스, 태사자와 가수 이정현의 뒤에서 춤을 췄다. 그렇게 4년간 백 댄서 생활을 했다. 춤추는 건 재밌었지만,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컸다. 인생에서 춤을 출 수 있는 때는 잠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3년 입대 후 만화가로 전직을 결심하고 '트레이스'를 준비했다. 군 생활 내내 일러스트를 계속 그렸다. 원래 출판만화를 생각했지만, 제대하고 보니 만화계 판세가 웹툰 시장으로 옮겨가 있었다.

잠시 게임 회사에 들어가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웹툰 공모전을 준비했다. 그리고 2006년 '트레이스'로 제 1회 시카프(SICAF) 디지털만화대상과 누리꾼 초이스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만화계로 입문했다.

고영훈 작가가 가장 아끼는 ‘트레이스’의 캐릭터 김윤성. 일명 ‘거지 아저씨’로 불리는 그는 비밀 정부기관에 끌려간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고영훈 작가가 가장 아끼는 ‘트레이스’의 캐릭터 김윤성. 일명 ‘거지 아저씨’로 불리는 그는 비밀 정부기관에 끌려간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당시 '트레이스'에 후한 점수를 준 사람이 바로 '웹툰 계의 거장' 강풀 작가다. 강 작가는 이후 그의 멘토가 돼 앞에서 끌어줬다. 원고료를 걱정하면 조언을 주고 영화 계약을 할 때도 그를 잘 이끌어줬다. 그는 강 작가를 "신(神)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강 작가는 "넌 나를 항상 섬기고 존경해라~"라며 장난스럽게 말한다고.

2007년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에 '트레이스'를 본격적으로 연재했다. 폭발적인 인기 속에 현재는 1기가 종료됐다. 2기는 올해 안에 시작할 예정이다.

'연애의 목적' 한재림 감독 신작 영화화

'트레이스'는 올해 100억 원대 예산의 수퍼 히어로 무비로 재탄생한다. 영화 '연애의 목적'으로 데뷔했지만, SF 장르의 팬인 한재림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마침 고 작가가 한 감독의 팬이라서 "감독님이라면 바로 하겠다"며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현재 시나리오가 세 번째 탈고된 상태. 원작 만화와는 달리 김윤성이 '사연 있는' 악역, 사강권이 그를 쫓는 주인공이다. 재밌는 점은 김윤성 역에 일찌감치 '올드 보이'의 배우 최민식이 섭외됐다는 것. 초능력을 써야 하는 생소한 설정에 고민하던 최민식은 "형님밖에 없다"는 감독의 하소연에 덜컥 수락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배우는 섭외 중이나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 상반기에 촬영을 시작해 하반기 개봉할 계획이다.

원작자로서 배우 욕심도 클 터. 마음대로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누가 좋을지 말해 달라고 했다.

"김윤성 역은 최민식, 설경구 씨나 박해일 씨요. 정희섭은 류승범 씨를 생각했는데, 영화에서는 사강권과 캐릭터가 합쳐진다고 해서 안타까웠어요. 최고의 인기 캐릭터 모리노아 진은 평소 좋아하던 정우성, 강동원 씨를 생각했는데, 최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 역을 했던 김남길 씨도 어울릴 것 같아요."

웹툰 ‘트레이스’에서 주인공 김윤성을 따르는 트레이스 집단. 일명 ‘거지 일당’
웹툰 ‘트레이스’에서 주인공 김윤성을 따르는 트레이스 집단. 일명 ‘거지 일당’


"2기 시작은 오바마와 MB의 만남 장면"

독자들이 눈 빠지게 기다리는 2기는 언제쯤 시작될까. 영화 개봉과 함께 본격적으로 연재할 전망이지만 그전에 외전 격으로 단편이 조금씩 나간다고.

2기는 트러블 휴지기라 인간 위주의 스토리 전개가 될 것 같다는 게 고 작가의 귀띔이다. 전 세계 트레이스 확보 싸움이 주가 된다고. 트레이스 세상에서는 핵무기보다 능력자 보유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김윤성을 데려가겠다고 하고 일본에서도 나선다.

"이미 2기를 그리고 있는데, 첫 장면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한국 이명박 대통령이 나와요. 현실 정치인이라 대사 하나하나가 다 신경 쓰입니다. 또, 김윤성을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1기 마지막에 김윤성이 트러블을 해치우는 과정에서 63빌딩(63시티)가 뚫리는데 거기서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 김윤성을 원망하게 되는 거죠.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모두 보여주고자 합니다."

고 작가의 작품은 한번 잡으면 눈을 뗄 수 없다는 의미로 '무서운 웹툰'이라는 별칭도 얻고 있다. 댓글 게시판에서는 "2년간 연재분을 정신없이 정주행 했다(첫 회부터 읽었다)"는 식의 소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는 "독자가 한 편을 봤을 때 뭔가가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편을 봐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만화 마지막에 놀라는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장치를 일부러 넣기도 한다고.

댓글을 꼼꼼히 읽는 것도 인기 비결이다. 악성 댓글도 빼놓고 않고 본다.

"솔직히 너무 심하게 비판하실 때는 '아니 돈도 안 내고 보면서 너무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일일 코믹 만화 그리는 분들께는 그림에 대해 별 요구를 안 하는 분들도 저 같은 스토리 만화 작가에게는 배경색까지 지적을 해요. 웹툰 작가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주 2회 쭉쭉 나오니까 쉽게 여기는데, 정말 아파도 못 쉬고 그리는 거예요."

끝으로 그는 자신의 만화가 아버지가 될 사람, 현역 아버지들이 많이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가령 독자가 여자라면 자신과 결혼할 남자친구에게 '트레이스'를 보여주면서, "너도 김윤성 같은 아버지가 되어야 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제 작품 속 캐릭터들이 좋은 아버지의 표본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내와 딸을 그리며 힘들수록 더 강해지는 김윤성처럼, 세상 모든 아버지가 가족이라는 소중한 울타리를 잊지 않았으면 해요."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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