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10>바른생활 작가의 엽기만화, 메가쑈킹

동아일보 입력 2009-12-29 18:23수정 2010-04-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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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은 우리 자기 간 추락하겠네."

"당신은 정말이지 배려심이 해저 2만리군요."

왠지 여자의 얼굴에도 수염이 나있는 것 같은 기묘한 그림체와 한계를 모르는 말장난. 이 두 가지를 무기로 2000년 초반 인터넷 대중화와 동시에 웹툰 계에서 이름을 날린 '메가쑈킹'(본명 고필헌·35).

그는 2003년 이른바 '19금 만화'인 '애욕전선 이상 없다'를 스포츠 신문 사이트에 연재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 이후 '카툰불패' '탐구생활' 시즌 1, 2, 3을 잇따라 히트 시키면서 웹툰 계의 중견작가로 자리 잡았다.

엽기적인 언어유희로 '작가도 엽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지만 28일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 마을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바른생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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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경험과 취재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정보기술(IT) 시대 속 만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학자와 가까웠다.

●요리사? 만화가?

그는 당초 조리사였다. 모 대학 식품영양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1996년 입학, 1997년 취사병으로 군대에 갔다 왔다. 하지만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1999년 자퇴 했다.

'놀기 뭐해서' 전공과 취사병 경력을 살려 에버랜드 한식당에서 근무하다가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26세 되던 해인 2000년 2년 코스 명지대 사회교육원 만화창작과에 들어갔다.

그 전까지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달력을 찢어 뒤에 그림을 그리거나, 갱지를 반으로 접어 스테이플러로 찍어 직접 그려 만든 '세 마리 아기 고양이' 등의 만화책을 보고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들이 "얘는 커서 만화가 되겠네" 칭찬들은 게 전부였다.

만화창작과에서 그는 수시로 교수님한테 뒤통수를 맞았다.

"뭐하냐."

남들이 켄트지를 펼쳐 놓고 선을 긋고 만화의 배경 칠하는 동안 메가쑈킹은 당시로서는 비인기 과목인 '컴퓨터 그래픽'에 몰두하고 있었다.

만화창작과는 만화가를 양성하기 보다는 유명 만화가 밑에 취직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테크닉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그런 학과 분위기 속에서 컴퓨터 그래픽은 비인기 과목이었다. 수강생도 메가쑈킹 한명이었다. 포토샵 등을 이용해 만화를 만드는 기법을 1대 1 강의를 통해 배운 셈.

아무도 관심 없고 '뻘짓'이라며 교수도 뒤통수치던 컴퓨터 만화에 그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시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던 '광수생각' 때문이었다.

메가쑈킹에게 '광수생각'은 쇼킹했다.

'붓으로 칠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색이 예쁘게 나올까.'

'광수생각'은 포토샵의 산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그는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메가쑈킹은 '카툰피' 등 만화 사이트에 연재를 시작했다. 2002년에는 DC인사이드에 '감격 브라다쓰'를 연재해 만화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독특한 그의 '언어유희'에 매료된 한 신문사 사이트에서 "19금 만화를 그려 달라"고 먼저 청탁이 와 '애욕전선…'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렇게 시작한 그의 웹툰 인생은 자신의 경험담을 유쾌 발랄한 언어유희로 패러디한 '탐구생활' 시리즈로 전성기에 전성기를 거듭하고 있다.

●발로 그려라

웹툰 계에서 '맏형' 격이 된 그에게 만화란 '발로 그리는 것'.

보다 많이 보고 보다 많이 느끼기 위해 그는 여행을 자주한다. 2007년 결혼한 그는 아내와 함께 58일간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하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대신했다.

'신혼여행'이 끝나갈 무렵. 강원 고성 통일 전망대를 향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장풍 같은 바람이 불어 아내가 차도 쪽으로 넘어졌다. 메가쑈킹은 급히 아내와 자전거를 갓길로 옮겼다. 그리고 약 10초 후 커다란 화물트럭이 아내가 넘어져 있던 자리로 지나갔다.

'9초만 늦게 바람이 불었더라면….'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끔찍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경험을 하기 전에는 느낄 수 없는 공포였다.

역시 깜짝 놀란 아내는 그때부터 "자전거를 타지 않겠다"고 우겼다.

그 뒤로 둘은 2시간 동안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자전거를 밀며 걸었다.

결국 식탐이 있던 아내가 맛있는 한정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뒤 먼저 시익 웃는 것으로 2시간동안의 냉전이 끝났다.

이 같은 크고 작은 생활 속 에피소드는 형태를 달리해 메가쑈킹의 작품 구석구석에 녹아들어 있다. 엽기적인 그림체와 현란한 말장난 속에서도 독자가 공감대를 찾는 이유는 이야기 하나 하나가 실화이거나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개그도 슬픔도 재미, 재미를 줘라

그는 어릴 때부터 '나와 대화 하는 사람을 무조건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도 조회 시간 전, 담임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교단에 서서 개그를 했다.

반 친구들을 어떻게 웃길까, 밤새 고민하고 아침에 '공연'하는 게 일상이 됐다.

무난한 가정환경, 가정교육에 전념하시던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바른 아이'로 자란 메가쑈킹에게 순간적인 개그나 언어유희는 일종의 일탈이었다.

소심한 그의 일탈이 지금 와서는 작품 속 엽기적인 언어유희가 된 것.

2006년 '애욕…'으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받았을 때도 소심한 그는 '뭔가 전산상에 오류가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잠시 속으로 우쭐하고 말았다.

남에게 재미를 주는데 골몰한 나머지 정작 스스로에게 어떤 재미를 줘야 할지 모르는 메가쑈킹.

웹툰작가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그가 꼽는 것이 바로 '발로 그려라'와 '남에게 재미를 줘라' 두 가지다. 그림실력은 메가쑈킹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후배작가들에게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권한다. 그림은 언제라도 배울 수 있지만 보고 듣고 느끼고 남에게 재미를 주는 재주는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포털 사이트나 책을 통해 연재처가 정해져 있지만 앞으로는 웹툰 계도 '무한경쟁' 체제에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지털이 발달할수록 콘텐츠의 거래형태는 재래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게 메가쑈킹의 전망.

백화점이나 할인점 보다 옥션과 같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여서 거래를 하는 '재래식 쇼핑몰'의 거래액이 훨씬 많아졌듯이, 만화와 같은 콘텐츠도 앞으로는 온라인 장터를 통해 거래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애플 앱스토어입니다. 앱스토어에서 소비자들은 철저히 본인이 원하는 것을 검색해서 구입합니다. 앞으로 독자들은 웹툰도 앱스토어 형태로 본인이 원하는 작품을 찾아볼 겁니다."

지나가다가 한번 클릭해서 보게 되는 작품 없이 오로지 독자의 취향에 맞아야만 뜰 수 있는 냉혹한 경쟁구도.

남들 종이만화 그릴 때 컴퓨터 만화를 공부했던 '선견지명'을 가진 메가쑈킹은 웹툰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광화문에서 홍대정도 거리는 걸어 다니고 틈만 나면 아내와 여행을 떠나며 경험을 쌓고 있다.


메가쑈킹은 5월 '탐구생활 시즌3'을 마치고 최근까지 쌓은 경험을 내년 1월 다시 연재가 시작되는 '탐구생활 시즌4'에 담아낸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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