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에게 말 걸기 20선]<16>고고학자 DNA 사냥을 떠나다

  • 입력 2009년 7월 1일 02시 57분


◇고고학자 DNA 사냥을 떠나다/마틴 존스 지음/바다출판사

《“1960년대 후반에는, 심지어 발굴현장에서 나온 씨앗이나 뼈를 연구하는 일조차 매우 새로웠습니다…고고학이 관찰하는 생물 유물 조각은 더욱 작아져 갔고, 이들로부터 이끌어내는 추론은 점점 더 풍부하고 놀라워졌습니다. 과학은 아주 작은 세포를 분석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러고 나서는 분자를 분석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

생물학 이용한 ‘현장의 재구성’

‘생체분자고고학’은 고고학의 최첨단에 있는 분야다. 발굴현장에서 나온 유물을 복원해 박물관에 전시하는 대신 그에 남아 있는 DNA 증거를 채취한다. 마이클 크라이턴의 ‘쥐라기 공원’을 생각해보면 쉽다. 이 공상과학 소설은 1980년대 초 ‘멸종 DNA연구모임’의 회원인 조지 포이너 주니어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호박에 갇혀 화석이 된 곤충에서 고대 DNA를 되살릴 가능성을 연구한 실제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DNA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생체분자고고학의 연구자들은 이전까지는 발굴 현장에서 전혀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먼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지푸라기, 나뭇잎, 곤충과 닮은 조그만 파편들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지금까지 네안데르탈인의 DNA 분석부터 매머드를 포함한 50여 종의 멸종 동물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이런 분석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의 정체, 인류가 최초로 가축을 사육하거나 곡물을 재배한 시기 등 고고학적 사실에 대한 궁금증을 심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고대 환경 체계도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고고학과 교수인 저자가 그간 진행됐던 연구 성과들과 그 의미를 소개해 준다.

예를 들어 1983년 토머스 로이는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돌 도구에 남아 있는 미세한 잔여물들을 연구해 당시 생활상을 유추해 냈다. 화석조직 안에 남아 있는 단백질에 대한 연구는 이미 이뤄졌지만 인공유물의 표면에 혈액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로이는 이것이 혈액단백질임을 분자분석을 통해 입증했을 뿐 아니라 그 성분을 분석했다. 고대의 혈액단백질을 용해한 뒤 현미경 슬라이드에 옮기고 재결정화한 것으로 100분의 1mm에 불과한 크기였다. 하지만 이 실험으로 당시 캐나다인들이 순록, 검은꼬리사슴, 돌산양, 회색곰, 눈신멧토끼, 바다사자 등을 사냥해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알프스 티롤 지방에서 단단하게 얼어붙은 채 발견된 고대 미라의 뼈와 머리카락에 남은 정보들은 그의 마지막 행적까지 추적할 수 있게 했다. ‘얼음인간’ 혹은 그 지역에서 붙인 ‘외치’란 별명을 가진 이 미라는 도끼, 활, 화살집을 지니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시신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 몇 가닥으로 동위원소 실험을 한 결과 얼음인간이 한참 동안 사냥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머리카락의 동위원소가 채식주의자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라의 뼈에서는 콜라겐의 동위원소 패턴이 발견돼 마지막 순간 사냥에 성공해 고기를 섭취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저자는 그가 다시 내려오기 힘든 높은 곳으로 올라간 것은 이 사냥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생체분자고고학은 서로 다른 두 분야가 우연히 만난 결과로 나타났다. 생물학은 분자적 구성에 대한 연구로 발전해 왔고, 고고학은 땅 밑의 고대 물질들을 폭넓게 탐구하고 있었다. 이 두 분야의 수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책은 수많은 학자들이 밝혀내지 못했던 연구과제들을 30여 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낸 핵심적인 성과들을 정리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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