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에게 말 걸기 20선]<3>박정근의 고고학 박물관

  • 입력 2009년 6월 12일 03시 03분


◇ 박정근의 고고학 박물관/박정근 지음/다른세상

《“발굴이 고고학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고고학의 참 매력은 출토된 유물과 부단한 대화를 할 수 있고, 다양한 추론을 통해 무한한 상상의 영역까지 사고의 폭을 넓혀 유물의 실체를 밝혀낸다는 것이다. 즉, 트로이의 목마처럼 상상의 부분이 실현될 수도 있는 학문이 고고학이다.”》

‘유물의 잠’ 깨우는 상상력

이 책은 고고학자인 저자가 라에톨리의 발자국(약 37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인류의 발자국),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다산·풍요를 상징하는 구석기시대 조각) 등 대표적인 출토 유물을 통해 선사시대 문화를 되짚어본 것이다.

흙냄새 나는 현장에서 건져낸 유물들은 인류의 조상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단서를 제공해준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고고학적 상상력을 펼친다. 선사시대에 대한 많은 지식들이 이런 발굴과 추론, 가설의 과정을 거쳐 형성돼 온 것이다.

초기 인류가 살았던 시대를 석기시대라고 한다. 그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던 도구가 돌연모였기 때문이다. 그중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내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부터 약 1만1000년 전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이전까지의 기간이다. 석기 제작 기술의 발전에 따라 구석기시대를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한다. 이 시기에 발굴된 연모, 나무창, 인골 등으로 구석기시대 인류의 삶을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약 140만 년 전 케냐의 체소완자 유적에서 불에 탄 흙덩어리와 함께 동물 뼈, 석기가 출토되는 등 발굴이 이어지면서 인류가 구석기시대에 불을 사용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게 됐다. 매장 풍습도 중기 구석기시대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각지에서 발견되는 뼈 화석에서 매장의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1908년 프랑스 도르도뉴 지역에서 발견된 라 페라시 유적에서 6명의 네안데르탈인의 뼈 화석이 나왔는데, 모두 일정 방향으로 묻혔고, 머리와 어깨 부위에 반듯한 돌이 놓여 있으며, 일부 돌에는 부활의 의미로 황토 흙을 칠해 놓은 것 등이 매장 풍습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석기시대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기온이 계속 상승했다. 지형, 식생대 등의 변화가 일어나며 인류의 생활방식도 달라졌다. 안정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다채로운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고 농사도 짓기 시작했다. 신석기시대의 시기는 토기의 유형으로 구분한다.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다량의 짐승 뼈들이 추출되는 것을 통해 이 시기부터 인류가 야생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한 삼각형 돌칼은 풍요, 창조와 관련된 염원을 담고 있다. 돌칼을 삼각형으로 만들었던 것은 삼각형이 그리스에서 자궁, 원천을 뜻하는 것과 인도에서 여성 생식기의 상징이자 창조의 원리로 이해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청동기시대는 청동으로 된 도구를 제작해 사용하던 시기를 의미하며 기원전 4000년∼기원전 1000년 사이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한 생활 양상이 전개된 시대다. 본격적인 농경과 반지상 가옥의 형태도 나타난다. 청동기란 물질문화로 대표되는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도시, 문명, 국가, 세습적 신분제, 문자 등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유물인 청동거울은 형상을 비춰주지는 못한다. 단지 상징적 의미를 담은 조밀한 기하학 무늬가 있다. 이는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거울이 아니라 신분을 확인시켜 주는 징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출토된 유물에서 시대상을 연역 추리하는 방식으로 설명돼 있어 흥미롭게 읽힌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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