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해리포터에 도전장 낸 ‘리버 보이’

  • 입력 2007년 11월 2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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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다. 3교시에 교장 선생님이 들어와 장래희망을 물었다. “과학자입니다.” “의사가 될래요.” 한참 만에 돌아온 떨리는 순서.

“만화영화 ‘손오공과 오로라 공주’에 나오는 공주랑 결혼하고 싶어요.”

그날 4교시 내내 나는 복도에 손들고 꿇어앉아 있어야 했다. 평소 듣던 아빠의 말씀대로 “육사에 가서 대통령이 되겠다(?)”던 친구와 함께.

유년의 기억은 늘 싱싱하다. 마음속의 무지개가 된다. ‘로봇 태권V’를 들으면 아직도 설렌다. 아사코는 3번이 아니라 100번쯤 만나고 싶다. 첫경험. 백지장에 그리니 흔적도 또렷하다. “아무거나 청소년 책으로 낼 수 없어 조심하고 조심하는”(은나팔 출판사 조미현 대표) 이유다.

요즘 청소년문학은 절대강자가 존재한다. 1997년 태어나 10년 넘게 권좌를 지켰다. ‘해리 포터.’ 국내에서도 6편까지 번역본만 1100만여 부가 나갔다. 이달 초부터 출간한 마지막 시리즈는 나오자마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다.

해리의 귀환을 카운트다운하던 지난달, ‘뜬금없이’ 한 청소년소설이 나왔다. 같은 영국 출신이나 이름은 낯선 ‘리버 보이’(다산책방). 삽화 한 장 없이 빡빡한 편집. 청소년용치곤 내용도 깊다. 성인소설도 해리 포터를 피해가던 시기였으니, 도박이었다.

그런데 이 책, 생각보다 잘 나간다. 물론 해리에 비할 순 없다. 그래도 한 달도 안 돼 2만여 부가 팔렸다. 각종 종합순위도 10위권이다. “그 덕분에 따스한 연말을 보내게”(다산북스 서선행 팀장) 됐단다.

일단 발상의 전환이 한몫했다. 남들은 치일까 두려워한 해리의 위세를 역이용했다. “해리 포터를 제치고 카네기 메달 수상!” 사실 함께 후보에 올라 상을 받은 건 1997년이다. 모두의 뇌리에 해리의 존재가 박혀있는 지금, ‘해리의 경쟁자’란 이미지는 지위를 격상시켰다.

뭣보다 책이 ‘따스하다’. 10대로선 버겁기만 한 이별과 죽음. 세상의 순리는 덧없이 강처럼 흘러간다. “강은 바다로 가는 중 많은 일을 겪어. 차이고 꺾이지만 멈추진 않지.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 거야. 그래야 하니까.” 열다섯 소녀 제스의 키도 그만큼 커져간다.

서정성을 담은 성장소설은 힘이 있다.

때로는 성인문학을 압도한다. ‘어린 왕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지금도 꾸준히 인기다. 제제의 이름을 닮은 제스. 그녀가 마주한 강은 넘지 못할 해리 포터가 아니었다. 맑은 자맥질로 독자들의 ‘순수’라는 강을 헤엄쳐왔다. 가슴속 품어둔 오로라 공주처럼.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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