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링크]체 게바라의 배낭 속에는 총보다 강한 詩가 있었네

  • 입력 2009년 6월 27일 03시 00분


◇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구광렬 지음/316쪽·1만2900원·실천문학사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라이게라의 작은 학교에서 총살당한다. 당시 발견된 그의 배낭엔 색연필로 줄이 쳐진 지도, 소형 무전기, 두 권의 비망록과 녹색 스프링 노트 한 권만이 들어 있었다. 유품은 모두 볼리비아 중앙수사본부 금고로 옮겨진다.

2002년 8월, 멕시코의 전기작가 파코 이그나시오 타이보는 볼리비아 군 수사기관 출신으로 출판사를 운영하던 친구에게서 배낭 속에 있던 녹색 노트의 복사본을 넘겨받는다. 노트에는 시 69편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모두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페의 작품이었다. 체가 좋아하던 시인들의 시를 간편하게 들고 다니며 읽기 위해 한 권에 필사해 뒀던 것이다. 타이보는 표지의 상표가 아랍어라는 점에서 체가 이 노트를 아프리카 콩고에서 머물 당시인 1965년 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추측한다. 2007년 볼리비아 중앙은행이 이 녹색 노트를 공개하면서 노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다.

체는 전투 중에도 책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독서광이었고 자작시를 짓기도 했다. 중남미 지역과 한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녹색 노트 속에 담긴 시를 통해 체 게바라의 마지막 3년여를 살핀다.

‘오, 검둥이들의 오랜 친구, 미시시피는 흐른다/물에다 혈관을 열어놓은 미시시피,/넓은 가슴, 한숨지으며 야만의 기타로/딱딱한 눈물로 아, 미시시피는 흐른다’(니콜라스 기옌, ‘에멧 틸을 위한 비가’ 중에서)

녹색 노트에 49번째로 적혀 있던 이 시는 1955년 백인들에게 살해당한 뒤 미시시피 강에 버려진 흑인소년 에멧 틸을 기리는 시다. 체는 아프리카에 머물던 시기 흑인 인권에 관한 니콜라스 기옌의 시를 여러 편 베껴 쓴다. 그가 쿠바 혁명에 성공한 뒤 또다시 아프리카로 떠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 이 시간에/내 안데스의 사랑하는 동심초와/앵두 같은 리타는 뭘 하고 있을까’라고 시작하는 세사르 바예호의 ‘죽은 전원시’에는 체의 첫 번째 부인 일다에 관한 일화가 숨어 있다. 바예호는 일다가 좋아했던 시인으로 이 시는 두 사람이 연애하던 시절 작별인사로 사용되곤 했다.

‘마치 예전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양,/창세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얼마나 많이 만들고 깨부수고 만들고 깨부숴야 합니까’라고 노래하는 레온 펠리페의 ‘항아리’는 체의 녹색 노트 마지막에 실린 69번째 시다. 이 시의 첫 연은 ‘죽음 말고는 다른 출구가 보이질 않았다…’라고 시작한다.

금고 속에 있던 체의 비망록 두 권은 1980년대 중반 유출돼 책으로 출판된다. ‘체의 마지막 일기’(지식여행)는 1966년 11월 7일부터 1967년 10월 7일까지의 비망록을 묶은 책이다.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은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1967년 볼리비아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삶과 사상을 담았다.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황매)는 체가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혁명가의 삶을 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9개월간의 중남미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체 게바라 어록’(시학사)은 체가 생전에 남긴 편지와 일기, 엽서 등에서 내면적 갈등과 삶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구절들을 모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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