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실패한 무전여행의 교훈

  • 입력 2009년 6월 20일 02시 59분


여행 김영민, 그림 제공 포털아트
여행 김영민, 그림 제공 포털아트
군에서 제대한 제자가 인사를 하러 찾아와 무전여행을 떠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 무전여행! 그의 말을 듣자 갑자기 수만 볼트의 전류가 등줄기를 관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아직 무전여행이라는 말이 남아 있는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는 그에게 되물었습니다. “무전여행이라고 했지? 참말!” 이틀 뒤 제자는 별다른 준비도 없이 곧바로 무전여행을 떠났습니다. 집을 나서며 전화를 했기에 나는 그에게 중간 중간 기착지에서 자주 전화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내 젊은 날 누구나 꿈꾸던 무전여행, 이제는 말조차 듣기 힘들어진 그것을 제자의 여정을 전해 듣는 방법으로라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제자는 의외로 담담하게, 그리고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나 대학교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군에서 배운 타로카드로 심심풀이식 점을 보아주며 여행 경비를 충당했습니다. 군생활을 하는 동안 ‘천개의 고원’이라는 어려운 철학서를 여러 번 되풀이해 읽은 뒤 자신이 직접 개량형 타로카드를 만들고 그것에 새로운 해석을 가해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던 모양입니다.

제자는 강원도와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상도에서 전화를 걸어왔을 때 더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밖의 말을 전했습니다. 놀란 내가 이유를 묻자 타로점으로 돈을 너무 쉽게 벌어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이 생겨 아무리 경치가 좋은 곳에 가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의 무전여행이 유전여행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제자의 무전여행은 결국 돈 때문에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동대구역으로 내려가 제자를 만나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자는 돈 때문에 무전여행이 실패로 돌아간 걸 무척 아쉬워했지만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격려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이 그의 젊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지니지 않고 떠난 여행은 출발하는 순간부터 돈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게 합니다. 돈에 신경을 써야 하니 여행지의 풍경을 감상하고 음미할 정신적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무전여행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에 더욱 시달리게 만드는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자는 여행의 본래 목적을 망각하고 돈에 대한 집착으로 길을 잃은 것입니다.

돈 때문에 무전여행은 실패했지만 제자는 더욱 큰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 욕망에 집착하면 바깥 풍경을 보지 못한다는 점, 다시 말해 자연과 동화되지 못하면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요컨대 수단에 집착하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다는 사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고질적인 문제와 닮아 있습니다. 젊음은 상처받기 쉽고 좌절하기 쉽지만 그래도 나의 제자처럼 무전여행을 떠나는 젊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 그들의 지혜로운 미래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작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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