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청소년 심리]우울증 겪는 ‘레옹’의 외톨이 소녀

  • 입력 2007년 11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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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그래요?”

“언제나 힘들지….”

코피가 난 얼굴로 아파트 계단 난간에 기대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묻는 어린 소녀 마틸다에게 레옹은 그렇게 대답한다. 영화 ‘레옹’의 여주인공 마틸다는 마약 딜러인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다. 네 살배기 남동생만이 유일한 애착 대상이었다.

옆집에 사는 레옹은 백발백중의 전문 킬러다. 글을 쓰거나 읽을 줄도 모르고, 통장에 돈을 입금하거나 사용할 줄도 모른다. 순진한 아이처럼 우유만 마시며 산다. 그의 유일한 ‘좋은 친구’는 화분 속 화초다. 마약조직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자 마틸다는 동생을 죽인 부패한 형사 스탠 일당에게 복수하고자 킬러가 되려 한다. 사랑하는 이가 살해당한 뒤 청부 살인을 하며 사는 레옹은 “복수는 나쁜 거야. 남은 평생 편안히 잠들지 못할지도 몰라”라고 말한다. 이들은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한 슬픔과 세상에 혼자 버려진 외로움을 공유하고 있다. 세상의 부조리를 다 아는 듯한 소녀 마틸다를 돌보며 레옹은 비로소 행복감을 느끼고 어른으로 성장한다.

복수하려고 무모하게 위험한 곳으로 뛰어든 마틸다를 구하려다 함께 살아날 수 없음을 직감한 레옹은 마틸다의 손에 자신의 분신 같은 화분을 쥐여 주고 안전하게 탈출시킨다. 레옹은 마틸다의 복수를 대신하고 목숨을 잃는다. 마틸다는 기숙학교로 돌아가 화초를 학교 뜰에 심는다. 그제야 레옹은 부초와도 같던 자신의 삶을 땅에 내려놓고, 사랑하는 이 곁에서 뿌리를 내리고 안식하게 된다. 통상 책임감이나 죄책감 없이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은 ‘품행 장애’로 진단된다. 이런 아이들은 커서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지게 된다. 이들은 도덕성이나 양심의 발달에 결함이 있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남에게 상처 주고 범죄를 저지른다.

얼핏 보면 마틸다는 품행 장애가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 ‘가면 우울증(masked depression)’에 가깝다.

아동, 청소년기 우울증은 가정에서 충족되지 못한 애정적 허기와 결핍, 상실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모나 애정을 느꼈던 사람의 사망, 사랑하는 애완동물의 죽음은 아이들에게는 큰 상실감을 줄 우려가 있다.

아동, 청소년은 성인과 달리 우울증상이 무단결석, 가출, 흡연, 도벽 등의 비행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 행동에만 주목하면 내면의 우울증을 보지 못하게 된다.

청소년은 충분한 애정과 보호를 받지 못하면 심한 외로움과 좌절감을 겪는 경우가 많다. 애정에 대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돈을 훔쳐서 무엇을 사 먹거나 물건을 사 모으기도 한다. 인터넷 게임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해 밤과 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런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야단이나 매가 아니다. 내면의 우울감을 먼저 이해하고 감싸 주는 어른들의 사랑이다. 마틸다에게 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신민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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