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대비하기 30선]<28>또 다른 나라

  • 입력 2006년 12월 1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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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사이에 이런 농담이 유행한 바 있다. 어떤 사람이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았더니 개구리가 이렇게 말하더란다. “키스를 해주신다면 전 예쁜 공주로 변할 수 있어요.” 이 말을 들은 사람은 키스는커녕 개구리를 주머니 속에 넣었고 놀란 개구리는 이렇게 투덜거렸다. “키스를 하면 예쁜 공주와 함께 살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죠?” 그 사람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너도 내 나이가 돼 봐. 공주보다 말하는 개구리가 더 좋지.” ―본문 중에서》

미국 심리학자가 노년에 대해 쓴 이 책을 읽으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친할머니가 떠올랐다. 저자는 사람들이 ‘노인’ 하면 조부모의 모습을 떠올리며, 손자 세대는 조부모 세대를 닮는다고 적었다. 내게도 친할머니의 모습, 이와 함께 지금 생전의 친할머니 나이에 도달한 부모의 사고와 행동이 겹쳐지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렇게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는 연결되나 보다.

손자 세대가 조부모 세대를 닮는다는 저자의 말도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노인이 된 우리들의 부모와 그들의 부모,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었지만 중년에서 초로기, 결국 그들과 같은 노년기로 진입하기 마련인 현재의 우리들 세대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노년기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당사자 및 가족들과의 상담 사례를 통해 세대 간의 이해에 무엇이 장벽이 되고 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실정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 한국의 어르신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노인들보다 더 살기 힘든 세월을 보내는 것처럼 여겨질까. 노년기의 현관문이라 볼 수 있는 갱년기에 접어든 우리 세대가 부모 연배가 되었을 때는 또 어떠할 것인가.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치매-노인 정신건강 클리닉’에는 주로 50세 이상의 갱년기에서 초로기, 노년기에 이르는 환자들이 진찰을 받으러 온다. 오늘도 치매 할머니를 진찰하면서, 강력히 병을 부인하려는 사위와 속으로는 어머니를 걱정하면서도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말은 안 해도 쓰라릴 딸의 마음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노년기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늙어 가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죄악시하는 젊은이 중심의 문화에서 노년의 세계는 ‘또 다른 나라’다.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세대 간 단절을 더욱 깊게 만들고 노인들을 오갈 곳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세대를 잇는 다리의 구실을 할 언어, 세대 간의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논지다. 국가적 차원의 제도와 정책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노인을 존경하도록 교육하고 성년이 돼서도 부모 세대와 우리의 가치관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부모, 부모의 늙으신 모습은 우리 자신의 미래다. 노인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은 늙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나 혐오감 없이 순응하려는 자세와 일맥상통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젊은이 중심의 현 세상에서 더욱 외롭고 버겁게 노년기를 보내고 계실 어르신들을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 자신의 미래를 이해하고 준비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전진숙 고신의과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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