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투자자 곁으로”… 혁명 시작되다

  • 입력 2006년 9월 1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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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부자들의 돈이 다 모여 있다는 국제금융의 중심지 스위스.

이 나라에는 ‘스위스 국민들이 알프스 산맥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긴다’는 세계적인 투자금융회사 UBS가 있다.

올해 초 UBS의 애너벨 브라이드 자산관리 담당 이사는 취리히 본사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본보 취재팀은 “고객이 UBS를 신뢰하지 않거나, 고객과 UBS 사이에 투자 의견이 다르면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었다. 브라이드 이사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한동안 눈만 껌뻑거렸다.

“고객이 UBS를 신뢰하지 않는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취재팀은 “한국에서는 고객이 증권사를 100% 믿고 자신의 전 재산을 맡기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브라이드 이사는 “UBS 고객 가운데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단언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당연하지요. 우리는 UBS니까요. UBS라는 브랜드는 곧 신뢰입니다. 고객의 신뢰를 잃는 순간 우리는 UBS일 수 없습니다.”

○ 브랜드가 없었던 한국 증권사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증권사들은 고객이 주식을 거래하고 내는 수수료 수입으로 먹고 살았다.

수수료가 주 수입원이다보니 고객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과 증권사가 돈을 많이 버는 것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었다. 고객이 돈을 잃든 따든, 거래가 늘어 수수료만 많이 들어오면 증권사는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브랜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업계 1위 증권사이건 40위 증권사이건 서비스는 비슷했다. 주식을 사고 파는 데 불편하지만 않다면 고객 입장에서는 수수료가 싼 회사를 택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었다.

○ 금융 선진국은 브랜드 선진국

이런 분위기에서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나올 리 만무했다. 브랜드가 신뢰로 통하는 다국적 투자회사들과는 애초부터 경쟁이 되지 않았다.

선진국은 다르다. UBS, 메릴린치, 슈로더, 피델리티 등 세계적인 투자금융회사들은 브랜드를 내세워 고객을 끌어 모은다.

UBS에 따르면 이 회사 고객이 UBS와 거래하는 평균 기간은 무려 40년이나 된다. 대를 이어 거래하는 고객도 흔하다. 스위스에서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로 못하는 고백이라도 UBS 직원에게는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 메릴린치의 존 올슨 자산관리상담사그룹 수석부사장은 “3대째 메릴린치에 자산 관리를 맡기는 고객이 적지 않다”며 “이는 고객이 메릴린치라는 브랜드를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브랜드 혁명의 신호탄

국내 증권업계의 분위기도 최근 들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구태에 젖은 영업방식으로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수수료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브랜드로 핵심 고객을 확보하는 증권사가 생겨났다. ‘Fn 아너스’ ‘true友riend’ ‘3억 만들기’ 등 각 회사만의 고유 브랜드가 등장한 것은 한국 증권업계의 판도 변화를 일으킨 ‘브랜드 혁명’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고객의 자산을 내 것처럼 관리

삼성증권은 증권업계에서 가장 먼저 브랜드 가치에 눈을 뜬 회사로 평가받는다.

경쟁업체들이 중개 수수료를 챙기는 데 급급했던 2000년 이 회사는 ‘삼성 Fn 아너스 클럽’이라는 브랜드를 개발했다. 선진 금융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그러려면 다른 회사와 구별되는 삼성증권만의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삼성증권은 이 브랜드를 발표한 뒤 ‘증권사가 하는 일은 고객의 자산을 관리해 주는 것’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중요한 것은 수수료 수입이 아니라 고객의 자산을 불리는 것이라는 점을 천명한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증권은 한국 증권업계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실험을 시도했다. 영업점의 시황 전광판을 아예 없애고 전 영업점 직원을 프라이빗 뱅커(PB·고객자산관리 전담 직원)로 만든 것.

이런 노력에 힘입어 ‘삼성 Fn 아너스 클럽’이라는 브랜드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급 자산관리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이는 한국 증권업계의 문화 전체를 바꿔놓은 혁명적 변화의 출발이 됐다는 평가다.

출범 1년만에 대표증권사 이미지 구축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6월 기업금융(IB)과 주식중개영업의 강자인 옛 동원증권과 자산관리 분야의 명가인 옛 한국투자증권이 통합하면서 출범한 회사다. 양사의 통합으로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이 1조5753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증권사로 떠올랐다.

신생 한국투자증권은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알릴 브랜드로 ‘true友riend 한국투자증권’을 선택했다. true友riend는 진정한 친구라는 뜻의 ‘true friend’라는 영문 가운데 f자를 친구를 의미하는 한자 ‘우(友)’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브랜드가 고객의 눈길을 끌면서 한국투자증권은 출범 1년 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증권사’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나갔다.

1년 동안 7293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순이익을 낼 정도로 합병의 효과도 컸다. 특히 ‘우정’을 상징하는 브랜드 덕택에 두 증권사 직원들이 빠른 시간 안에 통합과 화합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투자증권은 2020년까지 시가총액 20조 원, 자기자본이익률 2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VISION 2020)를 세워놓고 있다. 이를 통해 true友riend 브랜드를 아시아를 대표하는 금융 브랜드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적립식 펀드 열풍 이끈 간접투자 효시

지난해부터 간접투자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 중심인 적립식 펀드는 7월 말 현재 711만 계좌를 넘어섰다.

적립식 펀드 열풍을 이끈 것은 미래에셋 그룹이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적립식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 가운데 운용 규모 1, 2위가 미래에셋투신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일 정도로 미래에셋의 비중은 높다.

간접투자 문화를 선도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것은 ‘적립형 3억 만들기 펀드’라는 브랜드다. 2004년 3월에 첫 선을 보인 이 브랜드의 영향으로 200만 명 이상이 미래에셋의 적립형 상품에 가입했다.

이 브랜드는 아울러 서민들에게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미래에셋이 이끄는 인디펜던스와 디스커버리 등 장기 대형 펀드는 국내 시장에서 수익률 상위권을 휩쓸며 서민들의 꿈을 조금씩 실현시켜 나갔다.

미래에셋은 최근 국내 최초로 홍콩과 싱가포르에 해외 운용사를 설립해 아시아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금융시스템의 해외 수출’이라는 한국 자본시장의 또 하나의 숙원을 이뤄내겠다는 것이 이 그룹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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