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무서운? 재미난 주사기!…에르고노미社 토르셀

  • 입력 2006년 3월 1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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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에르고노미 디자인
사진 제공 에르고노미 디자인
스웨덴 브롬마에 있는 ‘에르고노미 디자인’ 본사는 언덕 위의 뾰족 지붕 이층집이었다.

디자인 회사를 찾아온 게 아니라 친구 집에 초대받은 느낌이랄까. 오렌지와 계피를 넣어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글루 와인을 선물로 챙겨 올 걸,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서 만난 에르고노미 디자인의 크리스테르 토르셀(사진) 매니징 디렉터는 “1860년대 건물을 20여 년 전부터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의 냄새. 스웨덴을 대표하는 산업디자인 전문회사의 첫인상이었다.

It's Design

○ ‘4E’의 경영철학

1969년 설립된 에르고노미 디자인에는 인간환경 공학자, 엔지니어, 디자이너, 프로젝트 매니저가 30여 명 모여 함께 일한다. 이 회사의 경영철학은 산업디자인을 인간환경공학(ergonomics), 엔지니어링(engineering), 미학(aesthetics), 경제(economy)라는 ‘4E’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토르셀 씨와 마주 앉은 회의실에는 펜처럼 보이는 빨강 노랑 초록의 물건이 있었다.

이 회사가 디자인한 화이자 사(社)의 ‘제노트로핀 펜’ 호르몬 주사기였다.

“많은 나라에서 어린이들이 성장 장애를 겪고 있죠.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는 아이들은 말합니다. ‘엄마, 주사가 무서워요’라고. 그래서 그들을 안심시키는 장난감 같은 디자인을 생각해 냈습니다.”

호르몬 주사기를 펜 형태로 만들어 일단 바늘을 숨겼다. 딱딱한 메탈 소재 대신 밝은 색상의 플라스틱을 썼다. 이처럼 ‘감성적’인 디자인은 어린이들이 두려움 없이 스스로에게 주사를 놓는 셀프 헬스케어를 가능케 했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를 위해 디자인한 주전자는 무려 2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60세가 넘어서도 일하는 이 항공사 승무원들은 30, 40년간 주전자로 물을 따르는 같은 동작을 되풀이해 어깨와 손목에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에르고노미 디자인은 조금만 들어도 물을 붓기 쉽고, 뚜껑을 여는 데 0.2초밖에 걸리지 않는 주전자를 만들어 냈다.

장애인용 핸들, 유아용 접시 및 숟가락, 평상복처럼 패셔너블한 구명조끼, 일정 온도가 넘으면 자동으로 눈 부분의 캡이 닫혀 용접공의 안전을 지키는 공업용 헬멧 등 이 회사의 디자인은 늘 사용자, 즉 인간을 배려한다.

○ 삶의 질 높이는 디자인

토르셀 씨에게 훌륭한 산업 디자이너의 조건을 묻자 ‘사회적 책임’을 맨 먼저 꼽았다. 팀워크, 예술적 심미안, 인체공학과 기능에 대한 총체적 이해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하긴 에르고노미 디자인이 설립될 당시부터 스웨덴은 국가적으로 노년층과 장애인 등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화두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스웨덴 디자인의 바탕에는 ‘스웨덴 모델’로 불리는 투명하고 평등한 사회구조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클라이언트의 입장에 서고, 클라이언트는 소비자인 국민의 복지를 중시하니 그것이 결국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그의 말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디자인을 원하는 기업과 국민이 디자이너의 책임과 사명을 규정한다는 뜻도 된다.

그는 “앞으로 의료와 스포츠 분야의 디자인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며 “단순히 아름다운 디자인이 아닌,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디자인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브롬마=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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