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삶의 기록-자서전 30선]<18>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 입력 2007년 3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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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 자신이 한 줄기 흐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고체처럼 충일하고 단단하고 안정된 자아라는 개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정체성보다는 한 줄기 흐름이 나는 더 좋다. 시간 속에서, 장소 안에서, 온갖 기묘한 형태로. 그렇다고 반드시 앞으로만 움직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과연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과 모순투성이의 정체성이 혼재하는 내면을 깊이 있게 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자서전은 한마디로 좌충우돌과 종횡무진의 표상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문화와 문화 사이를 넘나든다.

영국 왕세자의 이름을 딴 ‘에드워드’와 아랍 이름인 ‘사이드’. 그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인으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자랐고, 아랍인이면서도 미국 국적의 기독교 집안이라는 독특성이 있다. 아버지의 사업적 성공으로 부유하게 살면서 프린스턴과 하버드대라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컬럼비아대의 교수로, 저명한 비평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는 근본적인 정체성의 혼란으로 항상 불안정한 이방인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가 사용했던 언어는 ‘금지된’ 아랍어였고, 프랑스어는 항상 ‘자신’의 언어가 될 수 없었으며, 불가피하게 사용한 영어 또한 사이드의 정체성 혼란에 무게를 더하였다. 어느 순간에는 거짓된 자신의 대내외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내적 자아의 분출은 통제가 불가능하였다.

사이드는 강력한 아버지의 권위에 짓눌려 있지만 지속적으로 일상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는 문제아였다. ‘본국과 식민지 관계’처럼 심리적으로 갈등관계에 있으면서도 영양분이 많은 최면효과로서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비록 정치와는 무관한 ‘온실’ 속에 자라도록 제한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처절한 실상을 경험하였다. 열등한 지위 때문에 체념하며 가슴 한구석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부끄러움과 분노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팔레스타인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의 자서전은 단순하게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세계의 권력구조를 학문적으로 파헤친다. 서양의 식민권력으로 열등한 이미지를 생성하여 동양을 지배한 제국주의 음모를 해부한 명저 ‘오리엔탈리즘’(1978년)은 그의 삶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권력의 중압감에 따라 달라지는 흑백논리와 사이비 지성의 프리즘을 거부하고 편견에서 벗어나 진솔한 면모를 대면하도록 통렬히 비판한 사이드는 세계지성사에 충격을 던져 주었다. ‘한 시대를 움직이는 책’이라는 찬사를 받은 ‘문화와 제국주의’(1995년)는 문화와 제국주의 관계를 해부하면서도 궁극적으로 동서양의 화해를 내포하였다.

사이드 인생의 불협화음을 통해 그의 삶과 학문을 이해할 수 있는 자서전은 ‘세계화’에 휩쓸려 자신의 정체성에 무감각한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쓰라린 아픔을 던져 준다. 또한 영화를 누리고 있을 때에도 위험은 언제든지 닥쳐올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다모클레스(Damocles)의 검’을 상기시켜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는 마력으로도 작용한다.

박선영 포항공대 교수 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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