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즐겨라, 느긋한 나만의 성찬을

  • 입력 2008년 5월 9일 02시 59분


■나홀로 먹기 좋은 식당

《미국의 유명한 컨설턴트이자 사업가인 키이스 페라지 씨가 인맥을 쌓는 노하우를 담아 최근 펴낸 책 제목은 ‘혼자 밥 먹지 마라(Never eat alone)’이다. 가장 끈끈한 관계는 식사 테이블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몇 잔의 와인을 마시고 함께 빵을 나누는 사이에 사람들은 아주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누군들 혼자 먹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일에 몰두하느라 식사시간이 지나서, 같이 먹기로 했던 사람이 갑자기 약속을 취소해서, 혼자 낯선 곳으로 출장을 가게 되거나 혹은 누구와 약속 잡는 게 귀찮아서 혼자 먹게 될 때가 있다.

혼자서 커피 마시는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혼자 밥 먹는 건 질색인 사람들이 많다. 혼자 먹을 바에야 차라리 한 끼 건너뛰겠다는 사람도 있다.

식당의 푸대접 내지는 무(無)대접,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혼자 식사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불편함 등이 혼자 밥 먹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서울 시내에서 혼자 밥 먹기 좋은 식당을 소개한다.

혼자서 밥 먹는 사람이 많아서 혼자 가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혼자 오는 사람들을 배려해 인테리어나 메뉴 등에 신경을 쓴 식당들이다.

맛은 기본이다. 》

○밥과 국이 생각난다면

서울시청 주변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무교동 ‘북어국집’은 알아도 바로 옆에 있는 ‘내강’(02-777-9419)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간판에 있는 ‘內江(내강)’이란 한자 두 글자만 봐서는 식당인지 알기가 쉽지 않고 규모가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쪽 벽을 향해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긴 선반이 있고 그 앞에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 10개가 전부다. 혼자서 식사하는 사람이 많고 장소가 좁아서 일행과 함께 가도 나란히 앉아 먹기는 쉽지 않다.

메뉴는 갓 지어낸 밥에 무말랭이와 콩나물, 배추나물, 김, 강된장 등을 넣어서 비벼 먹는 비빔밥 한 가지다. 여기에 뜨거운 배춧국이 함께 나온다. 나물 종류에 변화가 있긴 하지만 배춧국에 비빔밥이라는 메뉴 하나로 40년 넘게 같은 장소에서 영업하고 있다. 밥은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고 반찬도 원하는 만큼 넣으면 된다. 가격은 5000원. 새벽 3시에 문을 열어 평일에는 오후 8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3시까지 영업한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무다.

비빔밥과 죽 전문 카페인 소반은 1, 2인용 테이블이 많아 혼자 가기에 부담이 없다. 보통 식당보다 양이 적은 대신 유기농 채소를 재료로 사용하고 깔끔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된장 보리 비빔밥 6500원, 불고기 비빔밥 7800원, 전복죽은 4000원. 광화문점(02-730-7423)과 서울대점(02-871-7423)이 있다.

○혼자서 고기를 즐기고 싶다면

식당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식당이 1인분은 팔지 않기 때문에 굳이 먹고 싶다면 2인분을 시켜야 한다. 혼자 고기 먹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도 감수해야 한다. 혼자 고기를 구워 먹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식당이 있다.

신촌 현대백화점 뒤에 있는 ‘고기촌 플러스바’(02-3141-9292)는 ㄱ자 모양의 바에서 1인용 돌판에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혼자 오는 사람을 위해 메뉴에도 ‘싱글’이 있다. 2만 원에 등심, 삼겹살, 항정살 등을 조금씩 맛볼 수 있다. 카페 분위기가 나는 인테리어에 클래식과 재즈 음악이 흘러 나와 왁자지껄한 여느 고깃집과는 다르다.

스테이크 하우스 ‘페퍼런치’는 좌석의 대부분이 바 형태다. 혼자서 스테이크 먹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소문나면서 손님의 절반 정도가 ‘나홀로 족’이라고 한다. 스테이크가 6300∼1만55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목동점(02-2163-2299)과 강남점(02-535-2300)이 있다.

○색다른 음식을 즐기고 싶다면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이태원 주변 레스토랑에는 ‘나 홀로’ 식사하는 외국인이 많아서 혼자 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남산3호 터널 쪽으로 100m 정도 가다 보면 오른편에 있는 멕시코 음식점 ‘타코’(02-797-7219)도 그런 식당 중 한 곳이다. 1층 바에 혼자 앉아 있으면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혼자 조용히 먹고 싶다면 2층으로 가면 된다. 바와 테이블 2개만 있는 1층과 달리 테이블이 10개 정도 있는 2층은 제법 넓다.

옥수수 토르티야에 고기와 양상추, 양파, 칠리소스 등을 넣어 돌돌 말아 먹는 멕시코 전통음식인 타코는 4000원, 타코에 밥이 들어간 부리토는 5500원.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한다. 설과 추석에만 쉰다.

바로 옆에 있는 ‘선더버거’(02-796-0075)는 수제 햄버거를 파는 집이다. 고기 굽는 정도를 선택할 수 있다. 쉬는 날 없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연다. 오리지널 햄버거 5000원, 치즈버거 6000원이다. 이태원에 있는 유명 식당들이 주로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 있어 찾기 힘들고 주차하기도 쉽지 않지만 이 두 집은 찾기 쉽고 식당 앞에 차를 댈 수 있어 편리하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나홀로 식사 푸대접 피하려면…

4인용 밑반찬 깔아놓은 곳 피하세요

미국에는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대도시에서 혼자 식사하기 좋은 식당을 소개하는 책이 있다. 또 일본 도쿄에도 모든 테이블이 1명이나 2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로 된 ‘테이블 포 원’이라는 식당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웬만한 식당에 혼자 가서는 제대로 대접받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혼자 밥 먹기 쉽지 않은 여건이지만 노하우를 알면 좀 더 우아하게, 적어도 식당에서 푸대접은 안 받을 수 있다.

식당을 고를 때 4인용 밑반찬을 기본으로 깔아 놓은 곳은 피하는 게 좋다. 직장인들이 많은 시청이나 종로, 강남역 등의 찌개나 전골 등이 주 메뉴인 한식당은 대체로 손님들을 더 받기 위해 미리 밑반찬을 깔아 놓는다. 그 대신 설렁탕이나 곰탕, 추어탕처럼 깍두기나 김치 등 밑반찬을 한두 가지만 내놓는 곳은 상대적으로 혼자 가기에 좋다.

혼자 밥 먹으러 가서 다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는 게 싫다면 바(bar)가 있는 식당이 좋다.

4인용이나 2인용 식탁에 혼자 앉으면 자리가 없을 경우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강요당할 수 있지만 바에 앉으면 그런 염려는 없다.

바가 있는 식당은 대체로 혼자 와서 먹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시선이 분산된다.

대형 텔레비전이 있거나 신문, 잡지 등 읽을거리가 많이 비치돼 있는 곳에 가면 음식을 기다릴 때나 밥 먹을 때 덜 심심하다.

그런 게 없는 식당이라면 신문이나 책을 한 권 들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 피크 타임은 피해서 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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